살인의 문 / 히가시노 게이고 - 좋은 인연은 가까이, 악연은 멀리.
살인의 문 1, 2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재인
1. ‘증오’에서 ‘살인’으로 가는 문. (살인의 문 1)
히가시노 게이고의 [살인의 문]. 이 작품에 독자가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남의 불행으로 재미는 느끼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고, 괴롭힘당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살의를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커지면 살인까지 이르게 되는 것일까.
주인공 다지마는 유복한 집안의 아들이다. 그의 인생이 불행으로 방향을 튼
것은 할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노쇠한 할머니의 죽음에 다지마의 엄마가
독살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부모가 이혼하고 집안이 몰락한다. 다지마는 그
소문 때문에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한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는 더 심한
따돌림과 폭력을 당한다.
외톨이가 된 다지마에게 위안이 된 것은 초등학교 동창인 구라모치다.
구라모치는 영악하고 말재주가 좋아, 사람을 잡는 매력이 있다. 게다가
구라모치와 함께 있으면 끊임없이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다지마의 주변에 일어난 많은 일들이 구라모치의 속임수 때문에 일어난
것을 알게 되고, 그동안 자신이 이용당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 속에서 다지마는 일방적으로 속고 이용당하는 피해자로, 구라모치
악인으로 묘사된다. 구라모치가 등장할 때마다 다지마는 계속 속고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읽다 보면 불길하고 답답한 마음이 일어난다. 직장을 그만두고
구라모치와 같이 살면서 구라모치를 파악하려하지만 매번 구라모치의 현란한
말솜씨에 속아 또 농락당한다.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살인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살인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동경하는 건 분명한 동기가 있고 살인의지가
지속적이며 냉철하게 실행에 옮기는 유형의 살인이었다. - 124p.
시마코 때문에 추락한 우리의 지난날을 생각하면 그 여자를
죽이고 싶은 것도 당연했다. 그보다 나는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다. 아버지가
과연 어떤 방법으로 그 여자를 죽일까 하는 것이었다. 죽인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이겠다는 결의는 얼마나 강렬한가, 그런 것들도 궁금했다. -
176p.
동기가 있다고 반드시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살인의 문’을 넘어야
한다. 다지마는 인간에게 ‘증오’와 ‘악의’가 살의를 넘어서 살인을 하게 되는
과정에 파고든다. 다지마의 인생은 구라모치 때문에 파멸의 길을 걷는다.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살해할 수 있을까? 살인의 문을 넘을 수 있을까?
2. 잘못된 인연, 악연의 끝은 어디인가? (살인의 문 2)
[살인의 문] 1권은 구라모치가 주인공 다지마의 삶을 농락하는
내용이었다. 학교생활부터 직장까지, 구라모치가 등장하면 다지마는 어김없이
그의 술수에 넘어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구리모치는 정말 지독한 인물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분노도 그렇지만 책을 읽는 독자도 그의 악행에 치를 떤다.
2권에서는 한술 더 떠서 다지마를 삶의 끝까지 몰아간다.
도대체 왜 나는 구라모치 때문에 이토록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는 왜 끈질기게 내 주위를 맴도는 것일까. 내가 편히 살
곳을 찾거나 심신을 쉬게 할 장소를 확보하기만 하면 어김없이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나를 그곳에서 끌어내 지옥의 밑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러고자
나타났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 구라모치가 끊임없이 내 주위를 맴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가 가장 다루기 쉬운 상대, 그것이 바로 나였다. - 121p.
구라모치의 영역에서 벗어나 가구점에서 조용히 자리 잡고 살던 다지마를
구라모치는 또 찾아내서 작업을 건다. 다지마는 매번 구라모치에게 속으면서도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이번에는 어림없다, 하면서도 결국에는 구라모치가
의도한 대로 일이 진행된다. 다지마는 구라모치의 계획에 반대로 행동하지만
결국 그것마저도 구라모치의 계획이었다.
다지마는 결혼을 하지만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다. 아내의 과소비를 감당하지
못해 부부싸움을 하고, 결국 막대한 위자료를 주며 이혼을 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결혼마저도 구라모치의 계획이었다.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었다(151p).’
다지마는 살의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 살의를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다지마는 살의를 증폭시키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일에 실패한다.
사람을 죽인다는 건 어떤 걸까, 어떤 기분이 들까, 사람은
얼마나 막다른 곳에 내몰렸을 때 살인을 하게 될까, 그런 것들이 궁금할
뿐이었다. - 123p.
살인자가 되느냐 못 되느냐, 그 둘 사이에 만일 경계선이
존재한다면 당시 내 마음은 그 경계선 주위를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
295p.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주변 사람 때문에 내 앞길이 막히는 경우가 있다.
다지마와 구라모치. 이런 악역도 없다. 악연의 끝엔 엉망진창이 된 다지마의
삶이 남았을 뿐이다. 그래도 더이상 악연이 이어지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동기가 있다고 반드시 살인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동기도 필요하겠지만 환경이나 타이밍, 그 당시의 기분 같은 것들이 맞아떨어졌을
때 사람은 살인을 저지릅니다. 어떤 계기가 주어짐으로써 살인이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계기가 없으면 살인자가 되는 문을 통과하지 못하죠. - 312p. ~
313p.
좋은 인연은 가까이하고, 악연은 멀리 하라는 말이 와닿는다. 악연은 내 삶을
갉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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