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공간에는 한 사람의 삶 전체가 온전히, 켜켜이 쌓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오래된 물건에는 스토리가 쌓이게 마련이듯이, 물 끓이는 주전자 하나, 전화기를 덮은 천 조각 하나조차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87세 할머니의 간소한 홀로 라이프 -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 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 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 타라 미치코 / 김지혜 / 더난출판사
87歲,古い團地で愉しむひとりの暮らし / 多良美智子
오래된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는 87세의 할머니. 손자의 도움으로 유튜브를 운영하며, 노년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결혼할 때 남편은 딸이 하나 있었다. 이후 아들 둘을 낳았다. 세 남매는 모두 독립을 하고, 남편은 7년 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결혼 후 장만한 작은 아파트에서 55년을 살고 있다. 자식에게 의지하여 살 법도 한데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고집한다. 오래된 집을 떠나지 않는 것은 할아버지 생각과 가정을 꾸려 온 보금자리라는 의미 때문이다. 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모든 물건은 할머니의 인생은 물론 가족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노년의 삶은 간소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정적이어서도 안된다. 할머니는 늘 배우려 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교육강좌를 찾아 배우고, 사람들과 번거롭지 않은 범위에서 교류한다. 노년의 생활은 젊을 때와 모든 면에서 다르다. 먹는 것, 입는 것, 움직이는 것 모두 바뀌어야 한다. 제때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삶의 엇박자가 일어난다. 가장 큰 변화는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욕심을 버려야 천천히 움직이고, 적게 갖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노년을 누릴 수 있다.
할머니는 노년의 간소한 삶을 보여 준다. 일어나서 간단히 움직이고,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하고, 늘 정해진 일과를 하나씩 처리해 나간다. 혼자 살면 외로울 것이라는 편견에 할머니는 혼자라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책을 읽다 보면 느림의 여유, 적게 소유한 살림, 노년의 호기심 등이 와 닿는다. 내가 나이를 먹어 할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사는 모습이 어떨지 생각해 본다. 그러면 할머니의 생활이 눈에 들어오고 부러운 생각이 든다. 이렇게 멋진 삶을 살 수 있을까.
나의 아침은 바닐라입니다. 은은한 달콤함이 내 몸을 깨웁니다. 나의 점심은 오트밀입니다. 건강한 에너지로 내 몸을 채워줍니다. 나의 저녁은 위스키입니다. 딱 한 잔으로 긴긴 어두운 밤도 훈훈해집니다. 그리고 하루의 끝은 레몬식초 2큰술입니다. 더 환한 얼굴로 일어날 다음 날을 기대합니다.
노년은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노년의 능숙함 덕분이다. 서두르지 않고, 망설이지 않는다. 젊은이의 단점을 연륜으로 극복한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사소함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작은 것에 집중해야 한다. 노년은 살아온 날보다 남은 생이 훨씬 적어서, 아쉬움과 두려움이 생길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매 순간 집중하며 사소한 것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남은 생이 더욱 기대된다.
오래전에 읽은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가 생각난다. 여든이 넘은 노부부의 삶을 보여 주는 책이다.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 평온함을 이 책에서도 느낀다. 그때보다 10살 더 먹은 내 모습에서 내 노년의 모습이 어떨지, 이분들처럼 나도 행복하고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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