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방문 프로젝트 – 이웃집 문을 두드리는 용기, 그리고 찾아온 변화. 일상의 의미
이웃집 방문 프로젝트 : 동네 사람에게 건넨 수제 케이크 200개의 기적
슈테파니 크비터러 / 김해생 / 문학동네
Hausbesuche: Wie ich mit 200 Kuchen meine Nachbarschaft eroberte
Stephanie Quitterer
저자 슈테파니 크비터러는 출산 직전 남편을 따라 베를린 구동독 지역으로 이사 온다.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기는 쉽지 않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외롭고, 출산 직전이라 몸도 힘들다. 게다가 타지에서 온 이방인에 대해서 견제하고 배척하는 지역의 분위기는 독일 어느 곳보다도 심하다. 배척은 혐오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반사회적, 반인륜적 혐오가 인구 2만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출신 지역에 대한 혐오(저자는 독일 남부 출신이다), 임산부에 대한 혐오, 신입 주민에 대한 기득권 행사 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출신 지역을 일부러 숨기기도 한다.
베를린같이 외지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곳에서 사투리를 쓰지 않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배타주의가 이토록 심할까? 스스로 베를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누가 순혈인가? 지역배타주의는 초등학생들의 말싸움만큼이나 유치한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 135p.
저자는 이런 배타적인 지역 분위기에 답답해하면서, 이에 맞서기로 한다. 하다 안되면 다시 이사 가지 뭐. 하는 심정이다. 저자가 생각한 방법은 단순 무식하게, 이웃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빈손이 아니라 수제 케이크를 만들어서, 집에 방문하고 그들과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이웃집 방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간단히 블로그를 만들어 이 프로젝트 계획을 알리고, 매일 할당량의 방문을 마치고 그 결과를 기록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동네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200일 동안 200가정을 찾아가 티타임을 하는 프로젝트예요. 제가 직접 구운 케이크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이 동네 이야기며, 여기가 얼마나 변했는지 같은 이야기를요. 저와 함께 치즈케이크 한 조각 드시겠어요? - 56~57p.
남편 톰은 이 프로젝트를 반대한다. 우선 위험하다는 것이다. 배타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고,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찾아가는 것은 너무 무모한 짓이다. 그 집에 ‘연쇄 살인범’이 살고 있을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케이크를 만들 재료와 도구를 사고 연습 삼아 케이크를 구웠다. 친구들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응원을 한다.
첫 방문은 실패였지만, 처음 남의 집에 문들 두드렸다는 것은 성공이다. 이에 용기를 얻어 다음부터 더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린다. 초기에는 대부분 바쁘다는 이유로 방문을 거절한다. 그런 중에도 잠깐이지만 시간을 내주는 주민이 있어,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런 프로젝트 이야기가 소문이 났는지 그다음부터는 방문에 호의적인 주민들이 많아졌다. 블로그를 보고 자신의 집에 와달라고 부탁하는 이웃들도 생겼다. 친구들의 반응도 좋았다.
나는 내 프로젝트를 사랑한다. 내 돋보기와 만화경을 사랑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난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날은 그 사람이 주인공이고, 그의 이야기가 가장 중심이 되며, 유일하게 중요한 주제가 된다. 주인공과 함께 주요 장면에 출연하는 일이 즐겁다. - 157p.
하루하루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삶을 알아간다. 이웃의 이야기는 곧 지역의 이야기가 된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금의 마을인 것이다. 새로 지은 아파트가 낡아가고, 재건축을 한 아파트가 옆에 세워진다. 거리의 변화된 모습,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 남녀가 서로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 이야기까지 모두 한곳에 모으면 대하소설이 따로 없다.
재미있는 이야기만 오고가는 것이 아니다. 집안의 슬픈 이야기, 이웃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듣는다. 어린 아들을 잃고, 이곳 공동묘지에 아들을 묻은 어느 주민은 이사를 못가고 여전히 이 동네에서 살고 있다. 이 지역에서 여전히 이방인처럼 느껴지지만, 매일 아침 해 뜨는 것을 보고, 공동묘지에 묻은 아들을 생각하고, 매일 일하러 간다. 매번 방문을 거절한 어느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 노인은 매우 가난했다. 변변찮은 살림을 보여주기 싫어서 사람을 집으로 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 일로 저자는 프로젝트에만 정신이 팔린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이웃에 대한 세심함이 부족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일 큰 변화는 길거리에서 인사를 하는 주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섞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들도 다른 집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 일을 저자의 블로그에 알려주었다. 자신이 남의 집을 방문하자, 남들도 또다른 집에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은 더욱더 활발해졌다. 저자의 이웃집 방문을 돕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케이크 재료를 보내주기도 하고, 저자가 몸이 안 좋을 때 대신 남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동네 분위기가 갑자기 밝아졌다. 길을 걸을 때면 트램펄린 위에서 통통 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톰은 지인들과 통화를 할 때마다 “우리집에 케이크 먹으러 한번 들러요” 같은 다정한 말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래서 케이크는 하루에 한 개만 구워서는 모자라게 되었다. - 159p.
이렇게 해서 저자는 2893번 초인종을 누르고, 130집을 방문했다. 프로젝트 기간은 120일이었다. 200개의 케이크를 굽고 200명을 만났다. 프로젝트는 성공이다. 이웃집 방문이라는 작은 행동으로 지역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을 헤쳐나갈 희망을 본 것이다. 약한 연결이 모이면, 작은 연대가 되고 이것은 강한 힘을 갖는다. 지역이 살아갈 현명한 자세다. 이에 저자는 다음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바로 이웃을 초대하는 일이다. 방문이 아닌 초대!
다음 프로젝트는 이웃을 초대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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