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세계 곳곳을 이어주는 통로, 공항에 대한 폭넓은 사색.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세계 곳곳을 이어주는 통로, 공항에 대한 폭넓은 사색.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의 현대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밖에 없을 것이다. - 16p.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알랭 드 보통 / 정역목 / 청미래
A Week at the Airport : A Heathrow Diary / Alain de Botton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알랭 드 보통 / 정역목 / 청미래



20대 후반, 직장에서 제주도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비행기를 그때 처음 타봤다. 공항에 처음 가봤다는 얘기다. 그 얘기를 들은 상사는 내게 말했다. 

“첫 비행기 여행은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지.”

큰 의미까지는 모르겠고, 일단 처음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 본 경험은 다른 경험과 비교할 수 없었다. ‘자주 비행기를 타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경험은 두고두고 내 입에 오르내리는 경험담 중 하나가 되었다.

단편적이지만 직업으로서 파일럿과 스튜어디스, 장소로서 공항은 모두 낭만적이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직업과 장소라는 점이 있어서, 선망의 직업이고 낭만적인 장소다. 공항엔 떠남과 도착, 만남과 이별이라는 행위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등장하는 공항은 그것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도 떠나고, 기다리고, 도착하는 공간이지만 공항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 공간의 스케일도 그렇고, 공항은 이곳과 저곳이 아닌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라는 느낌이다. 한번 떠나면 중간에 세울 수 없다는 점이 또 다르다. 그래서 공항에서의 떠남은 더 아쉽고, 기다림은 더 애틋하고, 만남은 더 감격스러운지도 모른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은 고국의 쿠데타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 머물게 된 이야기다. 영화는 공항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터미널]의 주인공 톰 행크스와는 달리 알랭 드 보통은 공항 측의 제안을 받아 일주일을 공항에서 머물게 된다. 그리고 공항에 대한 경험과 전체적인 인상을 작품으로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다. 

저자는 공항 내에 있는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고,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공간도 들어가 본다. 그리고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비행기 조종사와 승무원, 관제탑 직원, 보안 경비는 물론, 청소원, 식당 직원, 구두 닦는 사람까지. 공항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공항 이용객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공항을 마주하고 있다.

저자는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만난다. 한 명은 남고 한 명은 떠나는 연인들의 모습과 마중 나온 가족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여행객, 사업차 바삐 떠나는 비즈니스맨들의 모습도 책에 담는다. 무엇보다도 가족을 떠나고, 기다리고, 만나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본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을,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애틋하고 슬픈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항은 일반인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지만 작가에게도 많은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의 작품 중에 공항이 배경이 되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공항에서의 만남과 이별, 기다림은 인생에서의 만남과 이별, 기다림과 다르지 않다. 공항에 대한 동경과 현실, 그리고 폭넓은 사색. 저자는 공항과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낭만적으로 들려준다. 작가의 위트와 통찰력이 돋보인다.



     현대 사회에 널리 퍼진 이혼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공항에서 재결합하는 모습은 끊임없이 눈에 띈다. 이런 맥락에서 냉정하거나 금욕적인 척하는 것이 이제 소용없다. 지금은 연약하지만 통통한 어깨를 꼭 끌어안고 무너지며 눈물을 뿌리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에서는 힘과 강인함을 투사하며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지독하게 연약하고 위태로운 피조물들이다. 초조하게 텅 빈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는 남자들이 있다. 반년 동안 이 순간을 고대해온 남자들이다. 자신의 눈을 빼다 박은 듯 잿빛이 감도는 녹색 눈에 할머니의 뺨을 물려받은 작은 소년이 공항 직원의 손을 잡고 스테인리스스틸 문 뒤에서 나타나자 그들은 더 자제를 하지 못한다.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긴 세월이 흐른 뒤, 어른이 된 자식은 일상적인 출장을 떠나기 전에 늘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할 것이며, 그러다 집행유예는 어느 순간 끝이 날 것이다. 한밤중에 멜버른의 한 호텔의 20층에 있는 방으로 전화가 걸려와, 세계 반대편에서 아버지가 치명적인 발작을 일으켰으며, 의사들은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그날 이후 이제 어른이 된 소년은 도착 라운지에 늘어선 사람들 속에서 늘 빠져 있는 얼굴 하나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 1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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