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한 2023년, 그리고 자판기 커피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한 2023년, 그리고 자판기 커피


다이어리를 들춰보니, 2023년의 첫 소비는 1월 2일 도서관 자판기의 커피 300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소비도 12월 31일 커피 300원이었다. 자판기는 공공도서관에 있는 기계인데 오래된 기계고, 지폐와 동전만 먹는다. 그래서 지폐나 동전을 가지고 다녔다. 나는 가끔 봉지 커피를 사두고 정수기 물에 타 마시기도 했다. 

자판기는 가끔 고장이 났다. 고장이 잦자 사람들 불평불만이 이어졌다. 기계가 10년은 훨씬 넘었으니 새로 바꾸라는 것이다. 카드도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보탰다. 도서관 직원은 난처하다. 자판기는 도서관 직원 입장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가 바뀌어 2024년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자판기가 고장 났다. 오래된 기계이니 고장 난 것이 뜻밖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수리하려고 보니 부품이 없단다. 어쨌거나 새 기계로 바꿔야 한다. 

한 해의 처음과 마지막을 떠올려보다가 읽은 책을 찾아봤다. 

처음 읽은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다. 그다음 책은 [1973년의 핀볼]이었다. 2023년에 나는 하루키의 책을 초기 작품부터 읽기로 마음먹었다. 초기 3부작을 거쳐, 그다음 4부작(‘양을 쫓는 모험’ 중복), 태엽 감는 새 등을 순서대로 읽었다. 마지막에 읽은 책은 [1Q84-3]였다. 

2023년은 하루키와 함께한 한 해였다. 모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들이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면서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자판기는 이제 곧 새것으로 교체된다. 2024년은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서관 자판기 두 대

도서관 자판기 두 대


고장난 커피 자판기

고장난 커피 자판기

- 2024.01.22.



문구의 모험 - 문구의 역사는 곧 인간 문명의 역사

문구의 역사는 곧 인간 문명의 역사라고 말해도 그리 심한 과장이 아니다. ~ 생각하기 위해, 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뭔가를 적어두어야 하고 생각을 체계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구가 필요하다. - 347p.

문구의 모험 - 문구의 역사는 곧 인간 문명의 역사


문구의 모험 / 제임스 워드 / 김병화 / 어크로스
Adventures in Stationery / James Ward 

문구의 모험 / 제임스 워드 / 김병화 / 어크로스


가끔 문구점에 들를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문구는 전통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필기구와 노트만 해도 쉽게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것들을 하나씩 둘러보다 보면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문구는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호품으로의 역할도 한다. 문구점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감을 느낀다. 문구류에 둘러쌓인 것은 곧 풍요로움이다. 

오랜 기간 노트와 필기구를 비롯한 전통적인 문구가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지금은 컴퓨터와 휴대폰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문구는 우리 주변에 있다. 특별한 것을 제외하고 문구는 값비싼 것이 아니었다. 값싸고 작은 물건(노트, 연필, 볼펜, 지우개, 풀, 포스트잇 등등)으로 우리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생활을 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건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에 문구를 비치해둔다. 

문구가 상업적으로 대량 보급되던 때,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개발자의 이야기. 기업의 개발 전략, 판매 전략, 그리고 하나의 기호품으로 문구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문구에 대한 시시콜콜한 것부터 중요한 역사의 한 축이 될 만한 이야기까지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세상은 가끔 이 작가처럼 편집증이라 할 만큼 뭔가에 집중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런 결과물을 접할 수 있다. 저자가 문구에 집착하고 자료를 모으며 책을 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물건들 뒤에 있는 사람들. 브랜드 뒤에 있는 그들의 이름, 그들의 삶, 그들의 역사. 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알아내고 싶었다. - 37p.

저자는 온갖 종류의 문구에 대해서 역사와 발전, 응용에 대해서 많은 사실을 들려준다. 너무 작고, 흔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물건이지만 아이디어 하나를 내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그 치열한 과정을 볼 수 있다. 문구의 발전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역사와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종이 위에 뭔가를 쓰는 것은 인간의 창의성을 발현하는 훌륭한 행위다. 문구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아무리 IT기기가 발달하고 업무 환경이 변하더라도 문구의 역할은 축소되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기능과 형태의 문구가 등장할 것이다. 문구는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을 것이다. 아날로그 문구와 디지털 기기는 역할이 다르고 태생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러한 확신을 책의 뒷부분에 남긴다. 감히 말하건대, 인류의 문명은 문구의 도움으로 - 특히 종이와 연필 - 이만큼 이루어졌다. 앞으로의 미래도 문구에게 부탁한다.

문명이 처음 밝아올 때부터 존재했던 문구는 인터넷 따위의 엉성한 신출내기가 싸움을 걸고 자신을 죽이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터널에 갑자기 들어가더라도 펜은 작동이 중단되지 않는다. 연필로 쓸 때는 배터리가 닳아 충전기를 빌릴 일이 없다. 몰스킨 공책에 글을 쓸 때는 내용을 미처 저장해두기도 전에 오작동의 경고가 뜨거나 프로그램이 다운되는 사태가 일어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펜은 죽지 않는다. 펜이여, 영원하라. - 353p. 

문구는 형태를 바꿔가며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같이 읽어볼 책 :
1. 나의 문구 여행기 / 문경연 / 뜨인돌
2. 연필 / 헨리 페트로스키 / 홍성림 / 서해문집 
(가장 작고 사소한 도구지만 가장 넓은 세계를 만들어낸)
3. 그래, 나는 연필이다 / 박지현 / CABOOKS 
(영원을 꿈꾸는 연필의 재발견)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심각한 범죄. 그 공포와 심각성.

스마트폰은 단순한 통신기기를 넘어서 일상의 모든 편의를 담당하고 있는 도구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 업무, 금융과 라이프 다방면에 걸쳐 우리가 의존하는 기기다. 당연히 자신의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을 분실한다면? 그리고 개인정보가 범죄에 악용된다면? 이 소설은 이런 설정으로 시작한다. 개인정보 유출과 그에 따른 범죄는 상상을 초월한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심각한 범죄. 그 공포와 심각성.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시가 아키라, Akira Shiga / 김성미 / 북플라자 (2017년)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시가 아키라, Akira Shiga / 김성미 / 북플라자 (2017년)



이 소설은 3명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우연히 스마트폰을 주운 A, 스마트폰 주인의 여자친구이자 범인의 타깃이 된 여자 B, 연쇄 살인범을 뒤쫓는 형사 C.

A는 우연히 스마트폰을 줍는다. 그리고 B의 전화를 받는다. B는 스마트폰 주인(도미타)의 여자친구 ‘아사미’다. A는 전화기를 돌려주기로 하고 여자를 만나기로 하는데, 스마트폰에서 다양한 개인정보와 B의 은밀한 사진을 접한다. A는 B를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려 마음먹는다. 알아낸 정보로 가상의 SNS계정을 만들고 B에게 접근한다. 

B는 남자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어렵게 전화가 연결되지만, 모르는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남자친구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렸고, 그것을 주운 남자가 스마트폰을 전해주겠다며 만나자 한다. 그런데 스마트폰만 돌려받고 남자는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동창, 옛 회사 동료들로부터 SNS 승인요청을 받고 그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형사 C는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향한다. 신원파악이 늦어지고, 인근에서 다른 시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같은 지역에서 여러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는 것은 연쇄살인범의 소행이라는 의미다.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면서 그들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그런데 범인은 생각보다 철저하다.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신원파악도 쉽지 않다. 피해자 정보를 확인하고 가족을 찾아가지만, 가족은 계속 연락을 하고 있다며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살해당한 시점은 1년이 넘었지만, 가족과는 불과 한 달 전에도 문자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A는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서 ‘도미타’와 ‘아사미’의 정보를 알아내고 가짜 SNS를 이용해서 둘을 떨어뜨려 놓는다. SNS에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서 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아사미를 고립시킨다. 기술도 대단하지만, 범죄가 치밀하다. 조금씩 조금씩 아사미를 옥죄어 간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아사미는 이미 A에게 납치가 된 상태다. A는 그동안 아사미에게 접근했던 SNS 인물이었다. 

남자친구 도미타와 형사 C의 도움으로 아사미는 풀려나고 범인 A는 잡힌다. A가 바로 연쇄 살인마였다. 연쇄 살인마의 행적이 소름 끼친다.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르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피해자의 거주지에서 숨어지냈다. 범인은 늘 우리 주변에 있다. 그것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스마트폰에는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 각종 사이트의 비밀번호 등 다양한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사진과 통화 기록, 앱 사용으로 사생활을 엿볼 수도 있다. 이러한 정보가 남의 손에 들어가고, 그 정보를 악용한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손에 들고 다니며 편하게 사용하는 스마트폰이지만 보안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 이 소설은 그 경각심을 충분히 일깨워준다. 늘 사용하는 것을 사용할 수 없을 때의 불편함, 안심했던 대상으로 위협을 받을 때의 공포, 범죄에 노출되고 속수무책일 때의 패닉. 이 소설은 그런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넷플릭스 드라마화
배우 임시완과 천우희 주연의 드라마로 2023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소설과는 또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범인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숨통을 조여오는 압박감이 압권인 서스펜스 스릴러 드라마다.

작가의 후속작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붙잡힌 살인귀
시가 아키라 / 김진환 / 아르누보 (2019년)

Things I love about May: Bee Gees, green oaks, fringe tree, and decent weather.

Things I love about May: Bee Gees, green oaks, fringe tree, and decent weather. First of May by Bee Gees.   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