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다가, 울컥 - 책 읽다가, 울컥. 독자를 웃고 울리는 박찬일의 아련한 이야기들.

그의 글이 [시사IN]에 연재가 되었고, 많은 독자들이 글을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재가 중단되었을 때 독자들의 문의가 빗발쳤고, [시사IN]은 그 글들은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박찬일은 밥 먹다가, 울컥했고, 독자들은 책 읽다가, 울컥했다. 

밥 먹다가, 울컥 - 책 읽다가, 울컥. 독자를 웃고 울리는 박찬일의 아련한 이야기들. 


밥 먹다가, 울컥 / 박찬일 / 웅진지식하우스 
기어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

밥 먹다가, 울컥 / 박찬일



예전에 모 신문을 읽다가 한쪽 구석에 실린 칼럼을 보게 되었다. 지방의 오래된 식당(노포)에 관한 글이었다. 글이 진솔하고 인상 깊었다. 다 읽고 저자를 다시 봤는데, ‘박찬일 셰프’라고 적혀있었다. 요리사 박찬일을 처음 알게 된 때였다. 박찬일을 다른 곳에서도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첫 순간은 그 칼럼을 읽었을 때였다. 이후로 그의 글을 자주 읽었고, 방송에 나오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그때마다 처음 읽은 그의 글을 떠올렸다.

박찬일 셰프는 글을 잘 쓰기로 유명하다.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곳에 글을 쓴다. 그는 요리와 오래된 가게, 술과 사람에 관한 글을 쓴다. 발품 찾아간 노포, 술잔 기울이며 만난 사람들, 그들과 같이 먹었던 음식. 그의 글에는 정이 있고, 인생이 담겨 있다. 과거의 고달팠던 삶, 가난했던 유년 시절, 어려운 현실을 보내고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는 시대의 이야기다.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쉬 좌절하지도 않는다. 묵묵히 이겨내며 제 갈 길을 간다. 그렇게 공부하고, 일하고, 음식 만들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 경험이 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멋들어지게 꾸민 글이 아닌, 저자의 진솔하고 올바른 글이 독자의 마음에 깊이 파고든다. [시사IN]에 글을 연재하고, 독자의 반응이 좋아 책으로 만들어졌다. 글이 한데 모여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게 되어 기쁘다. 

그의 글에 울고 웃는 독자들은 좋은 글에 위안을 받으며, 먹고 사는 일에 진심을 다하게 된다. 음식과 가게와 사람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련하다. 무엇을 먹고, 누구와 먹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삶을 성찰하게 만든다. 먹고 사는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이 책 읽다가 울컥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1부 : 그렇게 사라져 간다
2부 : 차마 삼키기 어려운 것들
3부 : 추억의 술, 눈물의 밥


(책의 내용 발췌)

1. 늙은 아버지의 등을 함부로 보지 마시라. 

살아생전 몇 가지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어머니는 늘 일을 하시니, 새벽같이 나가셨다. 아침은 아버지가 차려 드셔야 했다. 어머니가 뭘 준비해놓지 않고 나간 날 아침에는 손수 음식을 만드시기도 했다. 두부를 꺼내고 간장과 다진 마늘에 파를 넣고 두부조림을 하시곤 했다. 술을 퍼마시고 들어와 자고 있는 나를 깨워 밥을 먹이셨다. 나는 그게 참 싫어서 짜증을 냈다. 그러다 숟가락을 들면 어찌나 또 맛이 있던지, 숙취의 이부자리에 누워 맛있는 두부조림의 유혹과 불편한 겸상의 선택 사이에서 잠깐씩 고민도 했다. 아버지는 무릎이 나오고 보풀이 인 낡은 내복차림에 등을 구부리고, 가스레인지 앞에서 두부를 조렸다. 그 모습은 아버지를 기억하는 중요한 스틸처럼 남았다. 늙은 아버지의 등을 함부로 보지 마시라. 슬픈 그림을 영원히 당신에게 남기는 일이다.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된 것은 누구나 대개 그렇듯이, 아들은 아버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유전의 모진 힘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달까. - 72p.


2. 고추장 1킬로그램과 마른 멸치 

나는 오래전 이탈리아에서 아주 개고생을 하면서 요리를 배웠다. 제일 힘든 게 음식이었다. 매일 오일에 버무린 스파게티와 송아지고기를 먹었는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람이 살 수가 없었다. 송아지고기는 싸고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어서 주인이 매일 주다시피 했다. 동네에 한식당은커녕 중국식품점도 없었다. 음식이 안 맞으니, 안 그래도 마르던 몸이 피골상접 상태로 가고 있었다. 매일 열 몇 시간씩 일하지, 제대로 못 먹지(송아지고기밖에 먹을 게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에는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삐걱거리는 싸구려 침대 밑에 전갈과 도마뱀이 돌아다니는 방에서.

그렇게 지쳐가고 있을 때였는데, 가게에 웬 소포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고추장 1킬로그램과 마른 멸치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울의 그 녀석이 보내준 것이었다. 운송료가 고추장과 멸치 값의 열 배는 들었을, 지구를 반 바퀴 돌다시피 해서 녀석의 마음이 왔다. 밥을 지어서 고추장 두 숟갈쯤에 멸치 몇 개를 부수어 넣고 엑스트라버진 최상급 올리브유로 비볐다. 먹는데 눈물이 났다. 

정작 한국에 와서 진짜로 크게 울어버리는 일이 새겼다. 녀석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것이었다. 영정 안에서 웃고 있는 후배를 보니 심장이 턱 막혔다. 요즘도 마트에서 고추장을 볼 때마다, 내게 보내준 것과 똑같은 빨간 상표 고추장을 볼 때마다 나는 발바닥이 쑤욱 꺼지는 것 같다. 사람은 기왕이면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기억도 막 쌓아서 나중에 죽어도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게 하는 게 좋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 32p.


3. 인생은 낯선 여행지의 식당 메뉴 같은 거

인생은 낯선 여행지의 식당 메뉴 같은 거라고 했다. 메뉴판에 적힌 것과 달리 뭐가 나올지 모른다고. 우리는 보통 ‘꼬였다’고 했다. 인생 꼬였네. 군대 생활 꼬였네. 회사 생활 꼬였네. 꼬인 줄을 풀다 보면 어느새 삶은 풀 수 없는 실타래 같은 거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 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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