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세계에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바닥(언더그라운드)으로 떨어졌을 때,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현실(행복)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굿바이 언더그라운드.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 나를 찾기 위해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 서진 / 한겨레출판사
2007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 책은 2007년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수상 당시에 이 책을 읽었는데,
한겨레문학상의 명성에 걸맞은 책이라 생각했다. 이야기의 구성방식이
독특했고, 재미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안겨주었다. 십수 년이 지나 이 책의
개정판이 나왔다. 예전 책이 개정판으로 재출간된다는 것은 책의 내용과 가치가
재평가된다는 얘기다. 한 번의 수상과 출간으로 머물지 않고 재출간으로 독자들
곁에 남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소설은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실 세계에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바닥(언더그라운드)으로 떨어졌을 때,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현실(행복)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현실과 상상(언더그라운드)의 조합이 뛰어나다. 이야기
전개 방식도 특이하다. 내용 중에 시간을 옮겨가는 과정은 테이프 플레이어의
버튼 방식을 이용한다.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고(되감기), 시간을 빨리 돌리기도
한다(빨리감기).
1부 : 나는 누구인가. 나를 찾아 지하철을 벗어나다.
(미국의 지하철) 나는 지하철이 움직이는 소리에 깨어난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지갑
속 신용카드에 내 이름인 듯한 ‘김하진’이라는 이름이 있고, 지갑 속에는
아내와 아들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아이의 사진이 있을 뿐이다. 나는 지하철역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항상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정신을 잃고, 깨어보면
몸의 군데군데가 상처가 난 채 지하철을 타고 있다. 하진은 지하철을 벗어나는
게 너무 두렵다.
하진은 자신의 기억과 가족을 찾으려고 지하철에서 폴카 음악을 연주하는
앤디에게 도움을 청한다. 앤디는 한인타운에 사람을 찾는다는 전단지를 붙이고,
하진은 ‘남편(하진)은 사고로 죽었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지하철 밖에만
나가면 쓰러진다는 하진의 말을 믿지 못하는 앤디와 함께 하진은 다시 지하철
밖으로 나간다.
2부 : 미국 이민, 역경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정말 행복한
일일까.
(앞으로 되감기) 인터넷 사업으로 성공한 K 선배의 추천으로 하진과 하진의
아내 미라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미국에서 K 선배의 인터넷 회사는
망하고, 하진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가기로
한다. 프로그래머였던 하진은 목수 일을 하게 되고 변호사 공부를 해오던
미라는 결국 변호사가 된다. 아들 민규는 약간의 자폐증을 가진 아이로
커나간다. 힘들어도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하진은 우연히 아내를 지하철에서 마주친다. 한 번도 지하철에서 아는
누군가를 만난 적 없던 하진은 호기심에 아내를 미행하는데, 아내는 변호사가
아니라 한인타운의 안마시술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진은 미행 사실을
아내에게 들키고, 아내는 하진에게 모든 것을 고백한다. 하진은 집을 고치는
공사를 하다가 실수로 기둥을 찍게 되고 집이 무너져 내린다.
3부 :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굿바이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공사 중 사고를 당해 눈을 떠보니 그는 ‘언더그라운드’에 와
있었다. 언더그라운드에는 지상에서 피신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다친
하진을 보살펴준 것은 에이프릴. 전직 의사인 폴은 약물을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하며, 언더그라운드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폴은 하진이 더 이상
지상으로 가지 못하게 지하철 밖으로 나가면 쓰러지는 약을 주고,
언드그라운드에서 집 짓는 공사를 맡긴다.
하진은 아들의 생일날 언더그라운드를 탈출한다. 아들과의 약속 장소인
코니아일랜드에 도착한 그는 아들을 만나게 되고 경찰에 쫓기며 예전에 아들과
함께 구경한 서커스 공연장에 들어간다. 그곳에서는 가장 행복했던 곳으로
관객을 이동을 시켜주는 해피니스 트랜스포터 마술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진은
그 마술에 참여하게 되고, 그가 가장 행복했던 곳으로 사라진다.
하진과 아들이 가장 행복했던 곳은 어디일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일까?
제목에서 보듯이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언더그라운드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뜻인데, 실상은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 현실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가상의 공간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을 기반으로 한 지하세계를
말하지만, 그것이 뜻하는 것은 위험사회, 하층사회, 희망이 없는 부조리한
사회, 소수 약자들의 사회 등 소위 '마이너리티'를 말한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양지의 세계에서 밀려난 사람들, 평범한 삶에서 뒤쳐진
사람들, 마이너리티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대변해준다.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 살아남는 방법, 탈출하는 방법에 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
시작은 '자아찾기'일 것이다. 작품 속에서 언더그라운드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현명하게 탈출하기를 기대한다.
저자의 독특한 서술방식도 이 책의 품격을 높이는데 한몫한다. 카세트의
플레이버튼, 되감기, 빨리감기, 멈춤 등의 기능을 적절히 사용한다. 처음엔
낯설지만 읽을수록 빠져든다. 기승전결을 모두 끝내지 않고 '그래서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독자가 궁금증을 갖게 하는 마무리 방식도 좋다. 글을
쓰는데 참고했던 자료 목록까지 실어주어 한층 격을 높였다.
인용 :
당신이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잠시, 라고 생각할 때 시간은
멈춰주지 않는다. 그 잠시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뀔 만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일 뿐이다. 변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아래로 밀려 내려간다. 인생은 오르막길이다. 막연한
미래를 기대하며 잠시 다른 일을 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하지만 당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당신은 잠깐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그런 사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당신에겐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는다. 버스는
떠났다. 기차도 택시도 오토바이도 모두 떠났다. 인생에 시간표 따위는 없다.
인생은 오르막길이다. 멈추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끄러지며 내려간다. -
50p. ~ 51p.
당신이 하는 일은 당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다. 당신이 아는 것이란 고작
거대한 톱니바퀴의 찌든 때에 불과하다. 당신은 찌든 때에 관해선 도사다. 언제
어떤 식으로 닦아야 하는지, 잘 먹는 세제가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당신이 지킬 수 있는 모든 것은 찌든 때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걸 아는지 모르겠다. 맑고 화창한 어느 날, 당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회사에서 잘려나갈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의 상사도 그랬고, 당신의 친구도
그랬고, 당신의 부하도 그럴 것이다. - 217p. ~ 218p.
당신은 중독자다. 하루에 자판기 커피 다섯 잔.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마셔댄다. 장에 싸구려 지방이 쌓이고 위는 헐기 시작한다. 궁금하지 않은
인터넷 뉴스를 짬이 날 때마다 클릭한다. 댓글을 읽는 것도 잊지 않는다. 누가
썼는지 궁금한 치사한 댓글일수록 당신은 열광한다. 3초마다 바뀌는 케이블
티브이의 채널.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를 생각해두지 않았는데도 채널을
바꾼다. 뭔가 나오기를 기다라며 손가락으로, 때로는 발가락으로 버튼을
눌러댄다. 당신은 중독자다. 당신이 그것들에 의지하는 동안 당신의 인생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인정하지 못한다.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 - 240p. ~ 24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