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할머니의 간소한 홀로 라이프 -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 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그 공간에는 한 사람의 삶 전체가 온전히, 켜켜이 쌓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오래된 물건에는 스토리가 쌓이게 마련이듯이, 물 끓이는 주전자 하나, 전화기를 덮은 천 조각 하나조차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87세 할머니의 간소한 홀로 라이프 -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 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 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 타라 미치코 / 김지혜 / 더난출판사
87歲,古い團地で愉しむひとりの暮らし / 多良美智子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 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오래된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는 87세의 할머니. 손자의 도움으로 유튜브를 운영하며, 노년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결혼할 때 남편은 딸이 하나 있었다. 이후 아들 둘을 낳았다. 세 남매는 모두 독립을 하고, 남편은 7년 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결혼 후 장만한 작은 아파트에서 55년을 살고 있다. 자식에게 의지하여 살 법도 한데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고집한다. 오래된 집을 떠나지 않는 것은 할아버지 생각과 가정을 꾸려 온 보금자리라는 의미 때문이다. 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모든 물건은 할머니의 인생은 물론 가족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노년의 삶은 간소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정적이어서도 안된다. 할머니는 늘 배우려 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교육강좌를 찾아 배우고, 사람들과 번거롭지 않은 범위에서 교류한다. 노년의 생활은 젊을 때와 모든 면에서 다르다. 먹는 것, 입는 것, 움직이는 것 모두 바뀌어야 한다. 제때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삶의 엇박자가 일어난다. 가장 큰 변화는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욕심을 버려야 천천히 움직이고, 적게 갖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노년을 누릴 수 있다. 

할머니는 노년의 간소한 삶을 보여 준다. 일어나서 간단히 움직이고,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하고, 늘 정해진 일과를 하나씩 처리해 나간다. 혼자 살면 외로울 것이라는 편견에 할머니는 혼자라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책을 읽다 보면 느림의 여유, 적게 소유한 살림, 노년의 호기심 등이 와 닿는다. 내가 나이를 먹어 할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사는 모습이 어떨지 생각해 본다. 그러면 할머니의 생활이 눈에 들어오고 부러운 생각이 든다. 이렇게 멋진 삶을 살 수 있을까.

     나의 아침은 바닐라입니다. 은은한 달콤함이 내 몸을 깨웁니다. 나의 점심은 오트밀입니다. 건강한 에너지로 내 몸을 채워줍니다. 나의 저녁은 위스키입니다. 딱 한 잔으로 긴긴 어두운 밤도 훈훈해집니다. 그리고 하루의 끝은 레몬식초 2큰술입니다. 더 환한 얼굴로 일어날 다음 날을 기대합니다. 

노년은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노년의 능숙함 덕분이다. 서두르지 않고, 망설이지 않는다. 젊은이의 단점을 연륜으로 극복한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사소함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작은 것에 집중해야 한다. 노년은 살아온 날보다 남은 생이 훨씬 적어서, 아쉬움과 두려움이 생길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매 순간 집중하며 사소한 것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남은 생이 더욱 기대된다. 

오래전에 읽은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가 생각난다. 여든이 넘은 노부부의 삶을 보여 주는 책이다.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 평온함을 이 책에서도 느낀다. 그때보다 10살 더 먹은 내 모습에서 내 노년의 모습이 어떨지, 이분들처럼 나도 행복하고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바다를 주다 –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바다를 주다 –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바다를 주다 / 우에마 요코 / 이정민 / 리드비(READbie)
海をあげる / 上間陽子

오키나와 출신의 저자는 오키나와의 청소년 문제와 관련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초기에는 위기 청소년(학업중단, 임신, 생활고) 문제를 다루다가 이후 십 대 여성의 생활과 어려움을 조사하고 지원하는 일을 해왔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현지 여성 성폭행과 각종 범죄를 접하고, 오키나와 여성의 성폭력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오키나와는 일본에 있어 ‘아픈 손가락’이며 ‘차별의 설움’을 받는 지역이다. 한때 미국 군정을 받기도 했다. 일본 땅이지만 미국이 다스리는 것이다. 일본에 있는 미군의 대다수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데, 그와 관련한 각종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군의 폭력과 범죄, 여성 상대 성폭력이 가장 큰 문제다. 

저자는 오키나와에 거주하는 십 대 여성 중 일찍 아기를 낳아 기르는 여성, 미군의 성폭행 피해자, 가족에 의한 성폭행 피해자. 생활고에 시달리는 어린 여성, 유흥업 종사자들의 사례를 조사하고 도움이 될 만한 일을 기획한다. 이들은 사회의 울타리 안에 들지 못해서 보호받지 못하고, 차별받고 있다. 이들의 인터뷰를 기록하고, 그 기사를 모아 이번 책을 엮었다. 인터뷰하면서 자신들이 받은 피해와 고통을 하소연하는 것만으로도 심적 치유가 된다.

여성의 불행은 대물림된다. 할머니, 엄마, 딸로 이어지는 비슷한 불행은 가족의 문제 이전에 사회문제다. 오키나와의 지역 특성, 역사, 관습, 경제적으로 오키나와 여성이 취약한 환경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 일본 본토와는 다르게 오키나와에서 빈번한 사례는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개선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비슷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심적 치유, 안정, 용기를 얻는다. 이웃의 연대가 필요하다.

평범한 가정이라도 위기는 있는 법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남편의 불륜으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내용이다. 친구들이 모여서 하소연을 들어주고, 같이 분개하며 위로해준다.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한 끼 식사를 만들어주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떨어져 산 지 석 달이 지났을 무렵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도쿄 집으로 온 남편과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고 나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들었다. 오랫동안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가 이웃에 사는 내 친구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한 달 전에 헤어졌고 지금은 내 친구에게 새 애인이 생겼다고 했다. 배신감에 힘들어하던 나를 도와준 것은 내 친구들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미국에서 날아온 가즈미, 된장국을 끓여서 싸 준 마유미, 날 위해 울어 준 레이코.- 11p. (맛있는 밥)

이 책은 곤란한 처지에 놓인 여성의 이야기를 인터뷰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은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 빠듯한 살림에 나이든 부모를 모시는 부부, 성폭력 피해자. 생활고에 놓인 여성들. 저자는 과격한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다면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그것이 작은 일이어도 큰 힘이 된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니까.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내 슬픔이 있기에 타인의 고통도 이해하고 감싸 안을 수 있다. 힘겨운 일을 이겨냈을 때의 삶은 이전의 삶과는 또 다를 것이다. 작은 도움을 줘서 상대방이 재기한다면 자신 또한 용기를 얻을 것이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다. 

나의 바다는 너의 바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그렇게 희망을 찾아간다.

너무나 절실한 현실을 앞에 두고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런 이들의 목소리를 저자는 어떻게든 들으려고 한다. - 요미우리 신문

세상이 외면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다.

맛있는 밥 / 두 명의 꽃 도둑
깨끗한 물 / 혼자 살아가다
파도 소리와 바닷소리
상냥한 사람 / 3월의 아이
나의 꽃 / 아무것도 울리지 않는다
하늘을 달리다 / 에리얼의 왕국
바다를 주다 
 


요약이 힘이다 – 요약은 핵심을 파악하고 시간을 절약해준다.

요약이 힘이다 – 요약은 핵심을 파악하고 시간을 절약해준다.


요약이 힘이다 / 사이토 다카시 / 김지낭 / 포레스트북스
Takashi Saito

회의 시간에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사람, 상사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한 말 또 하고 불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 이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핵심을 놓친 사람들이다. 방대한 자료를 짧게 요약하는 능력, 긴 서사를 한두 문장으로 정리하는 능력은 업무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유용하다. 

요약은 ‘A는 B이다’라고 정리하는 것이다. 긴 내용을 짧게 요약한다는 것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안다는 것이다. 많은 자료의 핵심을 한눈에 알 수 있게 정리한 것이니 업무 시간을 아껴준다. 요약 능력이 우수하면 효과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 꼭 필요한 능력이다. 유능한 사람은 요약부터 한다. 평소에 한마디로 표현하는 습관을 들이면 요약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다작으로 유명한 일본 학자 겸 작가 사이토 다카시. 주로 교육과 자기계발 분야의 저술이 활발하다. 하나의 주제를 쉽게 쓰기로 유명한데,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핵심을 이해하고 습득하면 독서의 목적을 다 이룬 것이다. 이 책은 요약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 능력을 키울 수 있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실제 적용 사례도 보여 준다. 저자의 책 자체가 요약력의 산물이다.

요약력을 키우기 위한 기초 트레이닝 방법 : 불필요한 삶의 낭비를 줄여라.

방대한 자료를 가지치기한다. 중요한 가지만 남기고 잔가지는 잘라낸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 필요한 것만 남는다. 전체 이야기의 기본 서사 구조를 만든다. 시작점과 도착점을 정하고, 그 사이에 디딤돌(핵심)을 놓는다. 디딤돌은 3개면 충분하다. 너무 많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자료를 정리할 때 중요한 부분을 표시한다. 그림과 그래프로 요약하면 심플해진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중요한 내용이 가려진다. 말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글이든 말이든 간에 오히려 다듬어 나갈수록 본질이 뚜렷해진다. - 120p. 

요약력을 키우기 위한 본격 요약력 트레이닝 : 본질을 파악하여 정곡을 찔러라. 

책이나 영화 한 편을 요약해본다. 줄이고 또 줄인다. 곁가지에 해당하는 내용은 지우거나 괄호로 묶어둔다. 젠가 게임을 하듯 지우는 연습을 한다. 줄거리를 요약한 글은 많다. 오히려 핵심만 남기는 것이 독특한 글이 될 수 있다. 호감을 사는 자기소개서, 상품 소개 글, 가게 홍보 글 등 타인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글을 쓴다. 이런 글일수록 요약이 잘 되어있어야 한다. 

정보는 넘쳐흐르고 시간이 부족한 시대다. 원하는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고 싶다면 ‘요약력’이 필수다. 요약은 단순히 정리하는 것을 넘어서, 빠른 시간 안에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구분해내는 능력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을 뽑아 결과를 끌어내는 능력이다.

나는 자기계발에서 꼭 필요한 능력으로 ‘집중력, 요약력, 정리력’을 꼽는다. 이 세 가지 능력은 서로 관련이 되어있고, 서로 영향을 준다. 이 능력이 뛰어나면 자기계발이 어느 정도 완성된 것으로 본다. 일상생활에서 이 세 가지 능력을 키우도록 연습하고 적용해야 한다. 

보통날의 식탁 - 나를 챙기는 사계절 식사, 그리고 시골 생활. 하루하루의 소중함.

보통날의 식탁 - 나를 챙기는 사계절 식사, 그리고 시골 생활. 하루하루의 소중함.


보통날의 식탁 / 한솔 / 티라미수

보통날의 식탁 / 한솔 / 티라미수



지난해, 가을이 시작될 무렵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겨울에 ‘겨울’ 부분만 다시 읽었다. 다가오는 봄에 ‘봄’ 부분을 한 번 더 읽을 생각이다. 계절마다 꺼내서 읽고 싶은 책이다. 재미 보다는 마음의 여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책을 읽다 보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많이 생각난다. 영화를 여러 번 봤는데, 재미보다 마음의 편안함이 더 크게 와 닿았다. 이 책도 같은 의미다. 

도시에서 음식 관련 일을 했던 저자는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살이를 시작한다. 도시의 삶은 활기차지만 쉬 지친다. 도시는 편리하지만, 너무 빨라 놓치는 것이 많다. 시골은 불편함과 부족함이 있지만, 그것을 감수한다면 모든 면에 여유가 있다. 도시인은 그래서 시골을 찾는다. 불편함과 부족함을 극복하면 오래 남고, 극복하지 못하면 다시 도시로 들어간다.

저자가 시골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도시에서의 직업과 다르지 않다. 재료를 손질해서 음식을 만든다. 직접 가꾼 작물도 있고 주변에서 얻은 것도 있다. 계절 재료를 이용해서 계절에 맞는 음식을 만든다. 음식에 정성을 들이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가족을 챙겨본다. 사람을 적게 만나고, 덜 바쁘게 살면서 자연을 마주하는 일이 더 늘었다. 시골 생활도 능숙해지고, 생각은 깊어지되 부담은 없다. 똑같은 일상이 도시에서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시골에서는 평화롭다. 

유튜브로 찾아보는 영상 중에 전원생활을 소개하는 채널이 여럿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전원으로 들어가서 살아야지’하고 마음 먹지만 몸 움직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골이라니. 도시의 편리함에 한번 익숙해지면 그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저자의 시골생활은 좋은 결실을 맺고 있어서 다행이다. 

     도시에서는 핸드폰만 열면 음식이 눈앞까지 배달되고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먹을거리를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읍내에 나가도 식당 종류가 별로 다양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만들어 먹는 게 빠르다. 그 덕에 요리 공부를 할 때보다 여기 와서 요리가 더 늘었다. 

시골살이는 자유롭고 평화롭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고립감을 느낀다. 도시에 살 때처럼 즐길 문화생활도, 특별한 먹을거리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골살이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마저도 즐거운 에피소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 가끔은 실패해도 괜찮아.  - 콩 커리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소중한 사람과 같이 먹는 일은 ‘일상’이다. 그런데 사는 일에 치여 일상이 즐겁지 않고 힘들다면 잘못 사는 것 아닌가 살펴봐야 한다. 성공을 위해서 기본적인 일상을 포기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도시 생활의 ‘기회와 성장’을 개인의 행복과 맞바꾸는 것도 서글픈 일이다. 

저자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제철 재료로 계절에 걸맞은 음식을 만든다. 이 책은 ‘어쩌면 조금 지쳐 있을 당신에게 전하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계절 식탁 일기’다. 영화 속 김태리가, 책 속 저자가 도시를 떠나 시골로 들어온 이유는 같다. 도시 생활에서 얻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것이다. 자연과 계절 음식으로, 가족의 사랑으로 허기진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한결같은 자연과 간소하게 차려낸 식사는 본인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위로와 긍정의 마음을 심어준다. 

     여기, 외갓집이 있는 합천과 오생리 우리 집을 오가며 자연을 만나고 거두고 요리해 차려낸 삼 년여의 시간을 담았다. 계절이 느리게 키워낸 제철 재료를 손질하고 작고 순한 마음을 얹어 나를 대접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치유였고, 다시 일어설 힘도 생겼다. 어떨 때는 별것 아닌 한 접시에서 유년 시절의 추억이 솔솔 피어나 달큼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대수롭지 않은 보통날의 가치를 이제야 알겠다. 현신은 언제나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결같은 자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움직이면 다 괜찮을 거라는 무작정의 긍정이 생겨난다. 지금 나의 마음은 더 이상 허기지지 않다. 간소하게 차려낸 사계절이 누군가에게도 위로이자 회복이 되었으면 좋겠다.  프롤로그 중.



보통날의 식탁, 밤잼 - 적막한 산에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만 

외갓집 작은 방, 할아버지의 책상 위에는 삼십 년이 넘은 오래된 수첩이 있다. 농사 일지인데, 그 오랜 세월 동안 언제 무엇을 심었는지, 수학량은 어땠는지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수첩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다음 해 농사 계획을 세우신다고 했다. 고추가 '고초'라고 적혀 있기도 한, 그렇게 틀린 글자마저도 매력적인 오랜 기록물이 내게는 보물처럼 느껴진다.

밤 농사는 외갓집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가을이 되면 밤을 수확하기 위해 온 가족이 출동했다. 늦여름부터 10월, 밤 농사가 끝날 때까지 휴일이면 아침부터 종일 밤을 주웠다. 엄마와 외삼촌은 평일에도 휴가를 내 할아버지와 함께 밤을 주울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의 모든 가을 추억은 밤 산에 있다. 

할아버지의 밤나무는 과실수로 치면 고목이다. 그래서인지 등이 굽은 것처럼 휘어진 나무도 많고 껍질도 거칠다. 커다란 밑동에는 곰팡이 같은 허연 지의류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일손이 부족할 정도였던 수확량도 세월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나무들도 나이 든 것이다. 

결국 몇 년 전, 큰외삼촌의 주도로 밤나무를 일부 베어내고 고사리 종근을 심었다. 가족들은 구수 넘은 할아버지가 고되고 위험한 일을 그만하게 됐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밤나무를 베어낸 해 가을, 가족들은 처음으로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주말에 어딘가로 놀러도 가고 가만히 앉아 무르익은 가을 풍경을 감상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허리 숙여 가며 밤을 줍지 않아도 되니 몸도 편안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마음은 우리 생각과 전혀 달랐던 모양이다. 밤나무를 베어내고 생긴 시간 여유가 할아버지에게는 허전함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에게 밤나무 산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생활터이자 친구라고 하셨었다. 정말 그랬다. 할아버지는 일이 없어도 산책 삼아 밤 산에 오르셨다. 마음이 답답할 때도 밤 산 중턱에 있는 원두막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드시곤 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할아버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결혼해 식구가 늘고, 고사리손으로 밤을 줍던 손주들이 장성하는 오랜 시간 동안 밤 산은 할아버지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봤다. 

본격적인 밤 농사를 그만둔 이후에도 할아버지는 밤을 주우러 밤 산에 오르셨다. 긴 세월 해온 일의 부재를, 뻥 뚫려버린 가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 오랜 벗 만나러 가기, 그것이 할아버지가 아는 유일한 가을 보내는 법이었다. 엄마는 홀로 산을 오르는 할아버지가 안쓰러워 가을의 여유를 반납하고 할아버지와 산을 오르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는 나도 엄마를 따라 할아버지와 밤을 주우러 갔다. 밤 산 여기저기에서 툭- 툭- 밤송이 덜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멈추면 적막이 흘렀다. 간간이 새소리,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날 뿐. 이 산이 이렇게 조용했었나. 온 가족이 모여 밤을 주울 때는 산이 다 꽉 찬 느낌이었는데... 할아버지의 허전한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할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으로 원두막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할아버지께 넌지시 여쭸다. 할아버지에게 밤 산은 어떤 의미냐고. 돈이 나오는 곳이니 좋다며 껄껄 웃으시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진심을 털어놓으셨다. 몇십 년을 함께 했기에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고. 아쉬운 마음에 밤 산에 올랐지만,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 이제는 이 산을 찾는 것조차 힘든 일이 되었다고.

"...밤도 다 됐고, 사람도 다됐고..., 세월이 인자 그만하라 안카나."

당신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세월이 이제 그만 밤 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 한다. 그 말씀을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할아버지를 보며 엄마도 나도 뒤돌아 눈물을 삼켰다. 지게를 지고 걷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그렇게 작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그날, 할아버지는 오래된 수첩에 밤 수확량을 기록하셨다. 마치 밤 농사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될 것처럼... - 본문 중 ‘밤잼’

말벌 - 눈에 고립된 산장에서 마주친 말벌과의 사투, 긴장감이 최고.

눈에 고립된 산장, 마주친 말벌과의 사투, 나를 위험에 빠뜨린 자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말벌과 추위, 살해 위협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주인공. 그런데 엄청난 반전이. 

말벌 - 눈에 고립된 산장에서 마주친 말벌과의 사투, 긴장감이 최고.


말벌 / 기시 유스케 / 이선희 / 창해 
Yusuke Kishi 

말벌 / 기시 유스케



1.
서스펜스 작가인 나(안자이 도모야)는 일부 작품이 인기를 얻어 작가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아내는 남편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림책 작가다. 부부는 눈 덮인 산장에서 신작의 성공을 축하하는 이벤트를 마련한다. 전날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내는 자취를 감추었고, 신발, 옷, 휴대폰이 사라졌다. 컴퓨터, 팩스까지 모두 불통이다. 그리고 내 귀에 거슬리는 소리, 바로 말벌의 날갯소리다. 예전에 말벌에 쏘인 적이 있는 나는 말벌에 취약하다. 이번에 또 쏘이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손잡이에 오른손을 대고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몸이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발밑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떨림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경악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지금 겁을 먹은 것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겨우 반격할 기회를 잡고 기세등등했다. 그런데 막상 말벌 대군을 향해 뛰어들 순간이 되자 공포가 밀려든 것이다. 단 한 번, 어디 한 군데라도 쏘이면 그것으로 인생이 끝날지 모른다. - 114p.

나는 아내의 불륜을 의심한다. 동료 작가와의 관계가 수상하다. 그들은 나를 없앨 생각이다. 그래서 산속에 나를 고립시키고, 말벌을 풀어놓았다. 그들의 계획대로 된다면, 나의 죽음은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다. 왜 나를 죽여야만 하고, 왜 말벌인가. 그들은 언제부터 이 일을 도모했던 것일까.


2.
작가 기시 유스케는 1997년 [검은 집](국내 2004년) 출간 이후 최고의 호러소설 작가로 부상한다. [말벌]은 2013년에 출간된 설산고립 스릴러다. 눈 덮인 산장, 모든 통신 수단 두절, 교통수단 무용지물. 게다가 자신에게 치명적인 말벌의 공격까지. 그러나 말벌 이외에도 나를 공격할 적들은 또 있다. 생명의 위협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주인공의 사투가 추위와 고립 속에서 더 긴박하게 다가온다. ‘최고의 호러작가’라는 타이틀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기시 유스케는 작품의 소재를 철저히 연구하기로 유명하다. 전문가급 지식을 작품에 녹여낸다. 이번 [말벌]에서도 말벌의 생태에 관한 전문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사실감을 극대화했다. 특히 1인칭 시점으로 말벌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듯, 숨 막히게 그려내고 있다. 몸에 와 닿는 한기, 심장박동과 통증, 말벌의 공포감이 압권이다.
 
미스터리 작품에서 1인칭 시점은 여러 가지 단점을 안고 있다. 미스터리 작품은 다양한 시점에서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여 추리를 입체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그래서 3인칭 시점이 서사에 유리하다. 그럼에도 작가는 1인칭 시점으로 긴장감을 극대화 시켰다. 이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며, 기시 유스케를 반전 장르문학의 거장으로 손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하실에 말고도 아직 살아남은 말벌이 있었던 모양이다. 말벌은 잡식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기본적으론 육식성이다. 어쩌면 내 피 냄새를 많았을지도 모른다. 젓 먹던 힘까지 짜내서 출구를 향해 기어갔다. 나무 바닥에 따뜻하고 끈적한 핏자국을 남기면서. 핼러윈의 호박처럼 생긴 오렌지색 얼굴. 치켜 올라간 커다란 두 눈. 미간에 있는 주술의 표식처럼 보이는 역삼각형 별 문양. 그 모습은 이윽고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 185p.

말벌의 습성에 관한 디테일을 보고 있으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3.
말벌의 공격을 받으며, ‘나’는 말벌의 치밀한 공격성에 놀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말벌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내놓으며 적을 공격하는 것일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말벌의 세계와 인간 사회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위에서 내리는 명령이 조직을 위한 일이라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 몫의 일을 다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제거당한다. 곤충들의 잔인한 본능과 조직에서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되는 현실, 양육강식의 사회구조를 비판한다.

여기는 인간 사회가 아니라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사회성 곤충의 소굴이다. 구성원은 매일 부지런히 밖을 날아다니며 꿀벌처럼 꿀을 모아온다. 먹이를 얼마나 많이 갈취했느냐에 따라 구성원의 가치가 정해진다. 상대를 많이 죽여 고기를 많이 만든 녀석은 칭찬을 듣고 꿀을 받을 수 있다. 한편 더러운 방법에 적응하지 못해 망설인 사람은 처절하게 비난을 받은 끝에 목이 잘린 채 구경거리가 된다. - 135p.

인간의 욕망과 광기는 여러 면에서 관심을 끈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욕망과 광기는 공포로 다가온다. 인간 본연의 모습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특히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광기의 표출은 사회적 공포가 된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광기에 의한 공포는 더욱 극대화된다. 소설은 공포를 차곡차곡 쌓으며 벼랑 끝으로 독자를 몰아간다.

주인공이 작가인만큼 이 책에는 작품 속의 작품들이 여러 편 나온다. 소설의 내용과 연관이 있거나 복선을 깔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두 번의 큰 반전이 나온다. [말벌]은 작가 기시 유스케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다른 작품도 두루 읽어봐야겠다.


4.
이 책을 읽다 보면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스티븐 킹의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배틀그라운드]다. 스티븐 킹의 단편집 [Night Shift]에 실려있는 15쪽 분량의 단편이다. 영화는 2006년에 제작되었다. 혼자 사는 주인공에게 택배가 도착하는데, 뜯어보니 작은 군인과 무기 세트다.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후 작은 군인들이 공격대형을 갖추고 무기를 이용해서 주인공을 공격한다. 작다고 얕봤다가 부상 당하고 집안은 쑥대밭이 된다. 고립된 집 안에서, 작은 적들과 대치하는 광경이 [말벌]과 유사하다. 영화를 보면 긴장감이 대단하다. [말벌]도 그렇다. 책을 읽고 영화를 다시 찾아봤다. ‘스릴러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 주는 좋은 소설, 좋은 영화다.




5. 그들은 나를 죽이기 위해 말벌을 이용하는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본문 인용)

그들은 나를 죽이기 위해 말벌을 이용하는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왜 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그것은 처음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커다란 의문이다. 누군가를 살해하는 방법으로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성이 부족한 데다 산장 안에 부자연스러운 공작의 흔적이 남게 된다. 

처음에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유메코는 사디스트적 성격이 아니고 내게 그렇게까지 원한을 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순수하게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자 두 가지 유력한 동기가 떠올랐다.

첫 번째는 보험금이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상당히 고액의 생명보험에 들었다. 보험에 가입할 때 그녀가 적극적으로 권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죽은 경우 보험금을 받는 사람은 그녀다. 잠깐만. 병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계약한 보험금만 받지만, 재해 사망 특약에 가입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경우에는 보험금이 두 배가 되지 않던가. 어디까지가 불의의 사고인지 잘 모르지만, 말벌에 쏘여 죽은 경우는 당연히 해당되리라. 즉 그들은 시신을 태우거나 매장해 내가 실종된 것으로 처리하지 않고, 불의의 사고로 죽은 것으로 위장할 생각이다. - 145p.


말벌 / 기시 유스케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의 대표작. 미래소년 코난의 원작.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의 대표작. 미래소년 코난의 원작.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 알렉산더 케이 / 박종서 / 허블
The Incredible Tide / Alexander Key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 알렉산더 케이




1. 알렉산더 힐 케이와 아포칼립스

알렉산더 힐 케이(Alexander Hill Key, 1904년 9월 21일 ~ 1979년 7월 25일)는 미국의 SF 작가다.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썼다. 대표작으로 [마녀 산으로의 도주 (Escape to Witch Mountain)]와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살아남은 사람들 멸망의 파도(The Incredible Tide)]가 있다.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은 훗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미래소년 코난]으로 제작된다. 

작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의 원형을 창조했다는 평을 받는 작가다. ‘아포칼립스(apocalypse)’는 크리스트교에서 요한 계시록(the Apocalypse), 계시를 말한다. 문명에서는 세계의 종말(doomsday), 사회적 대사건을 뜻한다. 전염병이나 핵전쟁, 기후변화 등의 재난으로 문명이 멸망하는 상황, 종말, 대참사를 의미한다. 대종말 이후의 세상을 뜻하는 것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다. 폐허가 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생활을 다룬다. 현대 대중문화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아포칼립스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제작되고 있다. 아포칼립스는 절망을,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절망 속 희망을 보여준다. 


2. [미래소년 코난]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전형적인 작품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애미메이션의 분량이 원작 소설보다 많다. 그래서 원작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 이야기, 추가된 설정과 이야기가 많다. 소설은 장편이지만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매우 단순한 소설이다.

대규모 무기를 사용한 전쟁. 핵전쟁 이후 폐허가 된 지구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두 지역으로 나뉜다. ‘인더트리아’는 기계문명의 중심지였지만 폐허가 되었고, 에너지가 부족해서 기계를 작동시킬 수 없다. 멈춘 문명이다. ‘하이하버’는 대격변 이전에 사람들이 이주해 온 곳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농사를 짓고,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여 필요한 것을 만들어 생활한다. 두 곳은 매우 대조적이다. 겉보기는 웅장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과거의 문명 인더스트리아. 먹는 것과 에너지, 물자가 모두 부족하다. 하이하버도 식량이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 속에서 경작이 가능하고 수확할 수 있는 먹을거리가 있다. 에너지는 원시상태를 벗어난 수준이지만, 불편하면서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3. 세기말의 혼돈은 새로운 세상을 원한다.

인더스트리아는 소수의 신체제 인원이 다수의 사람들을 지배한다. 이들은 평화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대륙을 지배하려 한다. 그것을 피해, 또 그에 맞서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 하이하버다. 신체제는 멈춰버린 문명을 다시 이용하려 한다. 필요한 것은 에너지. 그에 관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라나의 할아버지, 브라이악 로아 박사다. 소설은 바다에 표류하던 코난이 신체제 사람들에게 이끌려 인더스트리아에 가고, 그곳에서 로아 박사를 만나 하이하버로 탈출하는 이야기다. 신체제는 하이하버를 인더스트리아의 식민지로 만들 계획에 착수한다. 그때 코난과 박사가 하이하버에 도착하고,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 하이하버를 덮친다. 추격하던 신체제 인원은 해일에 휩쓸리고, 코난과 박사, 하이하버 주민은 살아남는다.

인더스트리아에는 멈춘 기계와 어른들이 거주하고 있다.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권위주의 체제다. 변화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 하이하버는 주로 진취적 아이들이 모여 산다. 새로운 문명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종말 이후 하이하버도 변질되기 시작한다. 어린이와 청년들 중심의 사회에서 계급과 권력이 생성될 기미가 보이는 것이다. 로아 박사는 코난에게 당부한다. 

“코난, 이제 나 같은 늙은이의 말을 들을 사람은 어린아이 빼고는 없단다. 청년은 달라. 청년은 오로지 청년의 말을 듣게 마련일 거고, 그것도 가장 힘이 센 청년의 말을 듣게 될 거다. 지금 이 하이하버에서는 큰 문제가 벌어지고 있어. 이제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바로 너란다.” - 324p. 


4. 사람이 희망이다.

최근 고령화 저출생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소설은 보편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신체제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신체제의 몰락을 예견한 로아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신체제가 멸망한다면 어쩔 생각이오? 예들 들어 추종자도 하나 없는 상황에서 신체제가 과연 존속할 수 있겠소? 인더스트리아에 머무는 동안 나는 젊은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소. 사실상 거기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제법 나이 많은 사람들뿐이었지.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 신체제는 결국 멸망하게 되고 말거요. 결국 당신은 아무 것도 아닌 대상에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이오.” - 311p.

이 소설은 1970년 작품이다. 50년 전에 전쟁과 고령화,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을 예견한 것이다.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동일한 결론을 얻는다. 이 세상의 희망은 어린이(출생, 동심)다. 그 사상을 따르는 인물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다.



5. 이제는 코난이 이곳을 탈출할 차례였다. (본문 인용)

코난은 자기가 이제껏 보관해 왔던 귀중한 땔감 더미 쪽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폭풍에 날아가기라도 할까 봐 커다란 돌멩이로 무겁게 눌러놓은 땔감 더미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판자 네 장, 나무토막 몇 개, 길고 구부러진 통나무 하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낡은 서프보드 하나, 작은 막대기 여섯 개가 있었다.

지금 코난이 직면한 문제는 이 물건들만 가지고 일종의 보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단순한 보트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보트를 말이다. 그 보트는 무엇보다도 매우 튼튼해야 했다. 몇 주 동안이나 바다에서 그를 안전하게 실어 나를 수 있어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훈제 물고기로 이루어진 식량이며, 바닷가에 떠밀려 온 갖가지 병에 담아놓은 물도 실어 나를 수 있어야 했다. 어느 누구도 그를 구하러 찾아오지 않는다면, 이제는 그가 알아서 이곳을 탈출할 차례였다. - 23p. 

나는 나를 고용하기로 했다 - 긱 워커로 일하기. 미래의 경제 패러다임

나는 나를 고용하기로 했다 - 긱 워커로 일하기. 미래의 경제 패러다임


나는 나를 고용하기로 했다 / 토머스 오퐁 / 윤혜리 / 미래의 창
Working In The Gig Econocy / Thomas Oppong 

Working In The Gig Econocy / Thomas Oppong



'긱(gig)'이라는 용어는 재즈 음악가가 하룻밤에만 단기 계약으로 연주하는 것을 말하는 속어였다. 이 용어가 양지로 나온 것은 십수 년 전이다. 메이커스 운동이 시작되고, 전기, 전자, 기계, 공작 등의 분야에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뭔가를 만들고 공개하면서, 그런 일을 하는 마니아 혹은 마니아 집단을 긱(gig)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용어는 확장이 되어 지금은 어느 분야의 전문가(긱 워커, gig worker)를 일컫는다. 그들의 경제활동을 ‘긱 경제(gig economy)’라고 부른다.

‘긱 경제(gig economy)’란 고용주가 필요에 따라 사람을 구해 단기로 계약을 맺고 일회성의 일을 맡기는 경제 방식을 뜻한다. 근로자는 어딘가에 소속돼 있지 않고 필요할 때만 일을 구하는데 이 일을 ‘긱 워크(gig work)’, ‘긱(gig)’ 혹은 ‘독립형 일자리’라고 한다. 긱 경제로 수입을 내는 사람, 즉, ‘긱 워커(gig worker)’ 혹은 ‘독립형 근로자’는 근로 시간을 스스로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 13p.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고용체계가 변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디지털, 비대면 환경이 강화되었다. 직장에 소속된 직원이 아닌, 회사와 계약을 통해 일을 맡는 계약근로자가 늘어났다. 긱 워커는 디지털 노마드, 프리랜서, N잡러, 플랫폼 노동자의 형태로 매우 다양하다. 이런 작업환경과 고용 여건은 점점 고착될 것이다. 그에 따른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초기의 긱 경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안고 있다. 규제가 뒤따르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어찌 되었든 대세는 기존의 고용 방식에서 긱 경제체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대비를 해야 한다. 

이 책은 긱 워커로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어떻게 일거리를 찾고, 대가를 지불받는지, 고객관리, 사업의 확장에 관해서 도움이 될 노하우를 설명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시작’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재능을 선보일 분야를 찾았다면, 그다음부터는 이 책의 도움말을 적용할 수 있다. 

나는 나를 고용하기로 했다. 긱 워커로 살고 싶다면?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라
내가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라
클라이언트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라
자기 관리의 기술로 혼자서도 효율적으로 일하라
자동화 기술로 더 쉽게 돈을 관리하라
일이 끊이지 않게 하는 마케팅 시스템을 구축하라

이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라’이다. 여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막상 뛰어들기가 어렵다. 그다음으로 어려운 것은 그 분야에서 자신의 입지를 세우고 이름을 알리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라’ 여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제 실질적으로 수익을 얻으려면 자신을 홍보하고 일거리를 찾고, 고객이 만족할 결과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으면 된다. 

저자는 각 단계별로 필요한 행동, 방법을 제시한다. 일단 한번의 거래가 성사되면 그것을 계기로 꾸준히 일거리가 들어오도록 시스템을 정비한다. 고객과의 관계, 효율적인 시간 관리, 업무 방식, 자동화 및 마케팅 등 사업을 키우는 일이 남았다.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어렵고, 사업을 벌이는 것도 어렵다. 고객과 계약을 해서 일을 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가 되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긱 워커의 비중이 많아질 것이다. 대비하지 않으면 경제활동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긱 워커의 시대가 온다. 긱 워커로 일하는 것이 바로 미래다.



나는 나를 고용하기로 했다 - 경력을 재구성하라 


(긱 워커로 일하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경력, 브랜드뿐이다. 경력에 관한 저자의 글이 있어서 인용한다.)

긱 경제 시대는 이제 겨우 시작 단계다. 가장 큰 변화는 달라진 경제 형태로 전 세계 곳곳의 전문가와 기업이 서로 기술과 전문 지식을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긱 경제에는 많은 기회가 숨어 있다. 만약 자신이 근무의 유연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지금이 바로 긱 경제에 뛰어들 시점이다. 

이제 사람들은 과거처럼 한 가지 직업을 골라 그 길만을 고수하지 않는다. 다양한 분야에 열정이 생기고 관심사가 수시로 바뀔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직업을 원한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어렵지 않게 직종을 전환할 수 있다. 이제 일하는 것과 직장 생활을 동일시하던 시각은 약해지고 각각의 프로젝트가 이어지는 것을 일이라고 보는 시각이 점차 보편화하고 있다. 당신도 독립형 근로자가 되어 최선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해보라.

경력을 한 권의 책이라고 가정해보자. 전통적인 경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책이라고 볼 수 있고, 독립형 근로자의 경력은 여러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경력의 재구성이란 마치 1장까지 집필을 끝내고 2장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과거에는 직업이나 경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나면 변화를 피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변화를 경력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만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경력을 끊임없이 재구성해야 한다. 

Things I love about May: Bee Gees, green oaks, fringe tree, and decent weather.

Things I love about May: Bee Gees, green oaks, fringe tree, and decent weather. First of May by Bee Gees.   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