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식탁 - 나를 챙기는 사계절 식사, 그리고 시골 생활. 하루하루의
소중함.
보통날의 식탁 / 한솔 / 티라미수
지난해, 가을이 시작될 무렵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겨울에 ‘겨울’ 부분만
다시 읽었다. 다가오는 봄에 ‘봄’ 부분을 한 번 더 읽을 생각이다. 계절마다
꺼내서 읽고 싶은 책이다. 재미 보다는 마음의 여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책을 읽다 보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많이 생각난다. 영화를 여러 번
봤는데, 재미보다 마음의 편안함이 더 크게 와 닿았다. 이 책도 같은
의미다.
도시에서 음식 관련 일을 했던 저자는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살이를 시작한다.
도시의 삶은 활기차지만 쉬 지친다. 도시는 편리하지만, 너무 빨라 놓치는 것이
많다. 시골은 불편함과 부족함이 있지만, 그것을 감수한다면 모든 면에 여유가
있다. 도시인은 그래서 시골을 찾는다. 불편함과 부족함을 극복하면 오래 남고,
극복하지 못하면 다시 도시로 들어간다.
저자가 시골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도시에서의 직업과 다르지 않다. 재료를
손질해서 음식을 만든다. 직접 가꾼 작물도 있고 주변에서 얻은 것도 있다.
계절 재료를 이용해서 계절에 맞는 음식을 만든다. 음식에 정성을 들이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가족을 챙겨본다. 사람을 적게 만나고, 덜 바쁘게
살면서 자연을 마주하는 일이 더 늘었다. 시골 생활도 능숙해지고, 생각은
깊어지되 부담은 없다. 똑같은 일상이 도시에서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시골에서는 평화롭다.
유튜브로 찾아보는 영상 중에 전원생활을 소개하는 채널이 여럿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전원으로 들어가서 살아야지’하고 마음 먹지만 몸 움직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골이라니. 도시의 편리함에 한번 익숙해지면 그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저자의 시골생활은 좋은 결실을 맺고 있어서
다행이다.
도시에서는 핸드폰만 열면 음식이 눈앞까지 배달되고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먹을거리를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읍내에 나가도 식당 종류가 별로 다양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만들어 먹는 게 빠르다. 그 덕에
요리 공부를 할 때보다 여기 와서 요리가 더 늘었다.
시골살이는 자유롭고 평화롭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고립감을 느낀다. 도시에
살 때처럼 즐길 문화생활도, 특별한 먹을거리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골살이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마저도 즐거운 에피소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 가끔은 실패해도 괜찮아. - 콩 커리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소중한 사람과 같이 먹는 일은 ‘일상’이다. 그런데
사는 일에 치여 일상이 즐겁지 않고 힘들다면 잘못 사는 것 아닌가 살펴봐야
한다. 성공을 위해서 기본적인 일상을 포기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도시
생활의 ‘기회와 성장’을 개인의 행복과 맞바꾸는 것도 서글픈 일이다.
저자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제철 재료로 계절에 걸맞은 음식을 만든다. 이
책은 ‘어쩌면 조금 지쳐 있을 당신에게 전하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계절 식탁
일기’다. 영화 속 김태리가, 책 속 저자가 도시를 떠나 시골로 들어온 이유는
같다. 도시 생활에서 얻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것이다. 자연과 계절
음식으로, 가족의 사랑으로 허기진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한결같은 자연과
간소하게 차려낸 식사는 본인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위로와 긍정의 마음을
심어준다.
여기, 외갓집이 있는 합천과 오생리 우리 집을 오가며
자연을 만나고 거두고 요리해 차려낸 삼 년여의 시간을 담았다. 계절이 느리게
키워낸 제철 재료를 손질하고 작고 순한 마음을 얹어 나를 대접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치유였고, 다시 일어설 힘도 생겼다. 어떨 때는 별것 아닌 한 접시에서
유년 시절의 추억이 솔솔 피어나 달큼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대수롭지 않은
보통날의 가치를 이제야 알겠다. 현신은 언제나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결같은
자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움직이면 다 괜찮을 거라는 무작정의
긍정이 생겨난다. 지금 나의 마음은 더 이상 허기지지 않다. 간소하게 차려낸
사계절이 누군가에게도 위로이자 회복이 되었으면 좋겠다. 프롤로그
중.
보통날의 식탁, 밤잼 - 적막한 산에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만
외갓집 작은 방, 할아버지의 책상 위에는 삼십 년이 넘은 오래된 수첩이 있다.
농사 일지인데, 그 오랜 세월 동안 언제 무엇을 심었는지, 수학량은 어땠는지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수첩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다음 해 농사
계획을 세우신다고 했다. 고추가 '고초'라고 적혀 있기도 한, 그렇게 틀린
글자마저도 매력적인 오랜 기록물이 내게는 보물처럼 느껴진다.
밤 농사는 외갓집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가을이 되면 밤을 수확하기 위해 온
가족이 출동했다. 늦여름부터 10월, 밤 농사가 끝날 때까지 휴일이면 아침부터
종일 밤을 주웠다. 엄마와 외삼촌은 평일에도 휴가를 내 할아버지와 함께 밤을
주울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의 모든 가을 추억은 밤 산에
있다.
할아버지의 밤나무는 과실수로 치면 고목이다. 그래서인지 등이 굽은 것처럼
휘어진 나무도 많고 껍질도 거칠다. 커다란 밑동에는 곰팡이 같은 허연
지의류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일손이 부족할 정도였던 수확량도 세월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나무들도 나이 든 것이다.
결국 몇 년 전, 큰외삼촌의 주도로 밤나무를 일부 베어내고 고사리 종근을
심었다. 가족들은 구수 넘은 할아버지가 고되고 위험한 일을 그만하게 됐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밤나무를 베어낸 해 가을, 가족들은 처음으로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주말에 어딘가로 놀러도 가고 가만히 앉아 무르익은 가을 풍경을
감상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허리 숙여 가며 밤을 줍지 않아도 되니 몸도
편안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마음은 우리 생각과 전혀 달랐던 모양이다.
밤나무를 베어내고 생긴 시간 여유가 할아버지에게는 허전함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에게 밤나무 산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생활터이자 친구라고
하셨었다. 정말 그랬다. 할아버지는 일이 없어도 산책 삼아 밤 산에 오르셨다.
마음이 답답할 때도 밤 산 중턱에 있는 원두막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드시곤
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할아버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결혼해 식구가 늘고, 고사리손으로 밤을 줍던 손주들이
장성하는 오랜 시간 동안 밤 산은 할아버지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봤다.
본격적인 밤 농사를 그만둔 이후에도 할아버지는 밤을 주우러 밤 산에
오르셨다. 긴 세월 해온 일의 부재를, 뻥 뚫려버린 가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 오랜 벗 만나러 가기, 그것이 할아버지가 아는 유일한 가을 보내는
법이었다. 엄마는 홀로 산을 오르는 할아버지가 안쓰러워 가을의 여유를
반납하고 할아버지와 산을 오르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는 나도 엄마를 따라 할아버지와 밤을 주우러 갔다. 밤 산
여기저기에서 툭- 툭- 밤송이 덜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멈추면
적막이 흘렀다. 간간이 새소리,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날 뿐. 이 산이 이렇게 조용했었나. 온 가족이 모여 밤을 주울 때는 산이 다 꽉
찬 느낌이었는데... 할아버지의 허전한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할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으로 원두막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할아버지께 넌지시
여쭸다. 할아버지에게 밤 산은 어떤 의미냐고. 돈이 나오는 곳이니 좋다며 껄껄
웃으시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진심을 털어놓으셨다. 몇십 년을 함께 했기에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고. 아쉬운 마음에 밤 산에 올랐지만,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 이제는 이 산을 찾는 것조차 힘든 일이 되었다고.
"...밤도 다 됐고, 사람도 다됐고..., 세월이 인자 그만하라 안카나."
당신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세월이 이제 그만 밤 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
한다. 그 말씀을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할아버지를 보며 엄마도 나도 뒤돌아
눈물을 삼켰다. 지게를 지고 걷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그렇게 작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그날, 할아버지는 오래된 수첩에 밤 수확량을 기록하셨다. 마치 밤 농사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될 것처럼... - 본문 중
‘밤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