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색깔이 가득한 그곳. 유럽 조지아. 가볼만한 여행지로 떠오르다. - Georgia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다양한 매력을 지닌 조지아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책에 깔끔히 정리된 문단이 있다.

 스위스 사람들이 산을 감상하러 오고,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 마시러 오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음식을 맛보러 오고,
 스페인 사람들이 춤을 보러 오는 곳, 조지아

알록달록한 색깔이 가득한 그곳. 유럽 조지아. 가볼만한 여행지로 떠오르다. - Georgia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Georgia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 권호영 / 푸른향기

내가 알고 있는 조지아는 미국의 한 주(state)와 커피뿐이었다. 미국의 조지아에서 커피가 나는 줄 알았는데, 미국 조지아에서는 커피가 나지 않는다. 커피 조지아는 일본 음료 회사의 브랜드로 조지아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곳이란다. 유럽에 ‘조지아’라는 이름의 나라가 있는지 생각지도 못했다. 흑해와 터키, 러시아에 인접한 조지아는 최근에 여행지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조지아는 교통이 편한 곳도 아니고 대도시가 밀집한 나라도 아니다. 치안도 나쁘다. 편리한 여행과 거리가 멀지만, 조지아가 보여주는 자연의 광활함과 올드시티의 분위기, 저렴한 물가가 매력적인 곳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내 눈길을 끈 것은 첫 글에 나오는 이 사진이었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모를, 알록달록 원색의 채소와 과일 매대. 아마도 시장의 한 가게였을 것이다. 사진을 보고 책의 뒷이야기는 궁금하지 않았다. 사진 한 장으로 충분했다. 조지아가 어떤 곳일지 순간 와닿았다. 여행은 이런 맛이 있는 것 아닐까. 마음을 사로잡는 하나의 무엇. 조지아는 사진 한 장으로 다가왔다.


조지아 책 첫부분에 나오는 사진. 그림 같다.

조지아 책 첫부분에 나오는 사진. 그림 같다. 


다양한 매력을 지닌 조지아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책에 깔끔히 정리된 문단이 있다.

 스위스 사람들이 산을 감상하러 오고,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 마시러 오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음식을 맛보러 오고,
 스페인 사람들이 춤을 보러 오는 곳, 조지아

유럽의 여러 나라가 지닌 매력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조지아는 아름다운 자연은 물론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도 사람들의 눈길을 잡는다. 대도시, 유명관광지 위주의 여행에서 자연으로 들어가는 여행, 불편함을 감수하는 여행, 비주류의 멋을 향하는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다.

‘유럽의 동남아’라 불리지만 국내에는 조지아에 대한 여행기나 정보가 많지 않다. 여행블로거 권호영의 이 책에는 조지아의 매력이 가득하다. 여행지에 관한 기본 정보는 물론이고, 조지아에서 주의해야 할 것들, 택시 타고 숙소 예약하는 등의 노하우를 잘 알려준다. 꼭 가야 할 곳, 그곳에서 봐야 할 것, 먹어야 할 것들을 정리해서 알려준다. 본인의 여행 감상도 빼놓지 않는다.

     매일 매일 뾰족한 설산을 바라보며 등하교를 하고, 카페 문을 열고, 빵을 만드는 이들의 마음은 파란색이거나 하얀색일 것만 같다. 그들의 얼굴은 마알간 해를 닮아 점점 둥그렇게 변할지도 모른다. - 183p.

간간이 적어놓은 조지아의 역사도 마음에 와닿는다. 평탄하지 않은 역사와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 여행과 역사와 사람을 잘 연결해놓았다. 이 책은 조지아의 유명 여행지인 카즈베기(Kszbegi), 트빌리시(Tbilisi), 시그나기(Sighnagi), 그리고 메스티아(Mestia), 네 곳을 소개하고 있다. 여행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좋은 정보를 주고, 조지아에 대한 동경을 심어준다.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여행이 반금지된 상태에 있지만, 조만간 여건이 나아지면 조지아를 향할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많이 걷고 많이 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한 곳에 가만히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온전히 느끼는 하루도,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며 맛보는 하루도, 미술관에 콕 박혀 보내는 하루도,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하루도, 전부 소중하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가득한 그곳에서는 특히 그랬다. - 222p.


조지아(Georgia) -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흑해를 끼고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 위치에 있는 조지아는 끊임없이 주변 강대국들의 침입을 받았다. 역사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운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라고 하니, 지금의 조지아가 독립하여 본연의 전통과 언어를 고수하고 있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 86p.

시그나기(Sighnaghi)가 사랑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조지아 친구 바로가 직접 말해준 전설은 이러하다.

옛날 옛적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는 프랑스인이 조지아의 작은 마을 시그나기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조지아에 놀러온 이웃 나라 러시아 여인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프랑스 화가는 자신의 재산을 탈탈 털어 그녀에게 바칠 장미꽃 백만 송이를 준비했는데. 과연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주었을까?

이루지 못한 그의 사랑을 담아낸 도시, 시그나기.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를 만든 러시아,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그 노래를 리메이크했으니. 이야기를 들려준 조지아 친구 바초와 러시아 친구 사샤와 다냐, 그리고 한국인인 나와 제이는 ”우리들이 이렇게 만난 건 운명인 거야.“를 외쳤다. - 137p.


조지아 지도

조지아 지도



졸업 / 히가시노 게이고 - 과연 우리가 다른 친구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추리에는 잘못이 없다.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다 완성된 추리도 꼼꼼하게 점검했다. 그 결과, 어떻게도 부정할 수 없는 스토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가가 스스로도 정말 믿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이제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 373p.

졸업 / 히가시노 게이고 - 과연 우리가 다른 친구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졸업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현대문학  
Keigo Higashino, 東野圭吾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들어낸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형사 가가 교이치로다. 작가는 10편의 작품에 가가 형사를 등장시켰다. [졸업]은 1985년에 데뷔한 작가의 1986년 작품이다.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며, 아직 형사가 되기 전의 가가 교이치로가 처음 등장한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풋풋한 청년의 가가 교이치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졸업을 앞둔 7명의 친구들은 분주히 졸업 후의 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동창 중 두 명이 살해당하고, 한 명은 자살한다. 연이은 친구의 죽음은 충격적이다. 친구가 죽는 시간, 그 장소에 친구들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범인은 그들 중 하나다. 처음 살해되는 친구는 밀실 트릭과 물리 현상을 이용한 살해다. 두 번째 친구는 일본 다도의 예법 중 하나인 '설월화 의식'의 트릭을 이용한다. 작가는 의식의 과정을 그림으로 설명한다.

친구를 의심해야 하는 입장이 불편하지만, 그리고 친구가 범인임을 증명해내는 것이 불편하지만, 가가는 진실을 찾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가가는 밀실과 물리 트릭, 그리고 설월화 트릭을 풀면서 범인을 찾아낸다. 

     사토코는 설월화에 참가한 다른 네 친구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모두 다 지금까지 서로 돕고 서로 마음을 나눠왔던 친구들이다. 하지만 가가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나 쌓아온 정 같은 건 모두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었다. - 238p.

이 소설에는 검도, 테니스, 다도의 동아리 활동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되었다. 일본 소설에는 학교 동아리가 한 축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일본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동아리 활동은 각 분야에 대해 깊이 이해는 물론이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가 시리즈의 시작이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가가의 진로가 어떻게 바뀌는지, 가가와 연인 사토코의 관계의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이후 시리즈에서 가가의 성향을 보여주는 실마리가 되겠다.

졸업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하다.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대학생 신분의 틀을 깨고 사회로 나가는 길목에서. 등장인물들은 진로와 교우관계 등 여러 면에서 재정비를 하게 된다. 살다 보면 어떤 매듭을 지어야 할 때가 종종 생긴다.


과연 우리가 다른 친구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토코는 조금 전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새삼 확인했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방금 도도가 말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살일 경우 자신들 중의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미카는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미카가 자살 같은 것을 할 친구인가. 그 점에 대해서라면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타살일 리도 없고, 나미카가 자살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런 패러독스가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었다. - 223p.

과연 우리가 다른 친구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거 아닌가?

나미카는 자살일지도 모르지. 아니.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해야 할거야. 하지만 우리는 그 동기에 대해 아무런 단서도 없어. 누구보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나미카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 쇼코 때도 마찬가지야. 그런 우리가 이를테면 도도나 하나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사토코를 불러낸 건 함께 진실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야. 사토코만은 믿을 수 있어. 그리고 또 한가지, 내가 사미카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어. 나미카는 결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것만은 확실해. - 237p.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 도시와 시골에서 사계절을 보내다. 5도 2촌의 라이프스타일

평범한 직장인이 시골집을 구했다. 소박하고 아름답고 여유로운 사계절 시골 생활. 자연과 더불어 5도 2촌. 가끔은 생활환경을 바꿔볼 만하다.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 도시와 시골에서 사계절을 보내다. 5도 2촌의 라이프스타일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 김미리 / 휴머니스트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 김미리 / 휴머니스트


도시 생활에 찌들고, 직장 생활에 치여 몸과 마음이 황폐해질 때, 마음은 시골을 향한다. 평범한 도시 직장인이 시골집을 마련하고 5도 2촌을 시작한다. 이 책은 직장인의 탈직장, 도시인의 탈도시 이야기다. 시골로 이주하는 것은 아니고 주중에는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고 주말에는 시골집에 가서 농사짓고 생활하는 것이다. 

시골집을 구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내가 원하는 조건과 매물의 조건이 딱 들어맞기가 쉽지 않다. 쓸만하면 비싸고, 괜찮다 싶으면 너무 멀다. 그래서 처음에 생각했던 조건에서 많이 물러나 집을 구한다.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다. 처음에 세워둔 조건은 ‘서울에서 1시간 이내, 주변에 이웃이 없을 것, 적당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조건의 문턱을 낮추다 보니, 서울에서 2시간 거리, 마을 외곽, 이웃집과는 두어 집 거리만큼 떨어진 곳이다. 가격도 처음보다 많아졌다. 그래도 만족한다.

집을 구했으니 이제 살 수 있도록 수리를 해야지. 거의 폐허에 가깝게 방치된 집이라 손 볼 곳이 많았다. 평소 생각해두었던 모습, 집의 형편에 맞게, 건축업자의 조언을 곁들여 집꾸미기 돌입. 그렇게 저자의 ‘수풀집’이 완성되었다. 이 집에서 시골살이에 돌입한다. 작은 텃밭도 가꾸고, 집을 다듬는다. 도시에서 일하는 것과 다르게 시골의 일은 새로운 활력이 되었고,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 ‘사람답게 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도시 생활을 청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5도 2촌을 무리 없이 실천한다. 

주말 생활만으로도 도시의 부대낌이 완화되었고 생활은 여유가 생겼다. 손이 많이 가는 시골 생활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었지만, 걱정과 다르게 재미있게 잘살고 있다. 시골 텃세도 걱정이었지만 좋은 곳을 골랐는지 별문제 없다. 이곳에서 4계절을 보냈다. 계절에 맞춰 작물을 심고 거두었다.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서울의 직장 생활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인간은 자연의 변화를 느끼며,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

저자는 시골 생활을 하며 시골에 대한 편견도 해소한다. 도시의 삶, 시골의 삶, 자연의 변화,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도 추스른다. 주거의 변화, 생활터전의 변화는 인생의 변화를 이끈다. 삶의 여유는 물론 생활의 재미, 그리고 일자리의 변화도 생겼다.

이 책은 시골집에서 보낸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사계절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시골살이에 대한 로망이 잘 드러나 있다. 막연한 시골살이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현실로 이룬 대견한 모습이다. 지금 도시에서, 직장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용기 내서 돌파구를 찾으라. 실행하는 자가 얻는다. 생활이 정체되고 무기력하다면 사는 모습을 바꿔라.

저자는 시골집을 찾고 고치는 팁과 노하우, 시골집 매매 체크리스트를 친절하게 덧붙였다. 시공과정과 생활하며 자잘하게 수선한 과정까지 담았다. 또 저자가 많이 질문받은 5도 2촌 생활의 Q&A 도 꼼꼼하게 정리해서 수록했다.
 


시골 어르신이 새로운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앞집 할머니는 60년 전에 이 마을로 시집온 후, 마을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예순 중반의 어르신은, 젊은 시절 잠시 마을을 떠나 서울살이를 하셨는데 몇 해 만에 다시 돌아오셨다고 했다. 마을 어르신 대부분이 이러했다.

나는 서울에서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10년 가까이 살았다. 토박이는 아니지만, 한동네에서 오래 살다 보니 눈에 익은 건물과 가게가 많다. 출퇴근길에 매일 지나는 오래된 식당도 그중 하나인데 얼마 전, 그 식당이 헐리고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그 식당이 무엇으로 바뀔지 궁금해서 며칠 내내 그곳을 기웃거렸다. 만약 내게 조금의 넉살이 있었다면, “여기 뭐로 바뀌는 거예요?”라고 슬쩍 물어봤을 것이다.

10년을 산 동네의 오래된 가게가 바뀌다니, 길을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다. 공사가 얼마나 진행됐나 싶어, 돌아가는 길인데도 일부러 그 식당이 있는 길로 간 적도 있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평생 산 마을, 그것도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집에 낯선 이가 든다니 그 신기함과 걱정이 오죽하실까. 내가 마을의 핫이슈가 되고, 우리 집 마당이 핫플이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낯설고 어색한 관계가 순식간에 편해질 리는 없다. 이 관계에는 다른 게 아니라 ‘시간’이 필요했다. 정겹게 색이 바랜 풍경화 속에 혼자만 새로 그려 넣어진 무언가처럼, 어색한 선명함이 사라질 시간 말이다. 나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그저 편히 있자고 다짐했다.

내가 이 마을에 들어오고 또 한 가구가 새롭게 마을에 정착했다. 조용하고 별일 없는 마을에 자주 없는 별일인 것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자꾸만 그 집 담장을 기웃거리게 된다. - 54p.



방주(方舟) –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모두 당했다.

지하 건물에 10명이 고립되고 3명이 살해된다. 7명 중 한 명이 범인이다. 범인을 희생시켜 나머지 6명이 건물을 탈출해야 한다. 범인은 누구인가. 범인은 자신을 희생할 것인가.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 범인만 살아남는다?

방주(方舟) –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모두 당했다. 


방주(方舟)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블루홀6 
方舟 / 夕木 春央, Haruo Yuki

방주(方舟)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블루홀6



작가 유키 하루오를 눈여겨봐야겠다. 1993년생인 저자는 올해 30살이고 [방주] 이전에 두 작품을 선보였다. [방주]의 추리와 반전이 대단하다. 이 책의 번역가 김은모는 '10년간 많은 본격 미스터리 소설을 번역해 왔지만 마지막에 이렇게까지 소름이 돋는 작품은 없었다'고 극찬을 했다. 번역가의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 반전이 대단하다. 일본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이 충격은 평생 간다'고 했다. 이러한 평은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납득할 수 있다. 당분간 이런 반전은 나오지 않을 듯싶다.

이 소설은 클로즈드서클(closed circle)물이다. 추리소설에서 ‘클로즈드서클’은 외부와 단절된, 고립된 장소를 뜻한다. 외딴 섬, 눈 속에 갇힌 산장, 비행기, 배, 입구가 막힌 건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제목 ‘방주’는 성경에 나오는 배인데, 적절한 제목이다. 이렇듯 고립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이 클로즈드서클물이다. 어느 정도 설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한 분야가 되겠다. 

등산동호회 친구 6명과 멤버의 사촌은 친구의 별장에 놀러왔다가 특이한 건물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기로 한다. 지하 10미터 아래 3층 구조로 지어진 건물은 흡사 배 모양을 닮았다. 그리고 산에서 길을 잃은 한 가족 3명이 찾아든다. 늦은 시간이라 10명은 건물에서 머물고 다음날 떠나기로 하는데, 간밤에 지진이 일어나 건물의 입구가 큰 바위에 막힌다. 이 바위는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이전 건물 사용자들이 만들어둔 것이다. 출구는 지하 3층의 반대편에 있는데 물에 잠겨있다. 10명은 건물에 고립된 것이다.

이 건물을 소개한 ‘유야’가 살해당한다. 이곳에 갇힌 사고의 출발은 ‘유야’였다. 건물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도 멤버들이 이곳에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9명은 사고의 책임을 유야에게 돌리고 있었다. 그러니 누군가 앙심을 품고 살해했을 것이다. 누가 범인인지 모른다.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를 치워야 한다. 바위를 입구 아래로 떨어뜨릴 방법이 있지만, 누군가 바위 아래 갇혀야 한다. 즉, 9명 중 한 명이 희생해서 나머지 8명을 살려야 한다.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산속에 묻힌 이 화물선 같은 지하 건축물에서 탈출하려면 아홉 명 중 누군가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하니까. 우리는 희생양을 선택해야 한다. 아니면 모두 죽는다. 어떻게 선택할까? 아홉 명 중 죽어도 되는 사람은, 죽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건 그를 죽인 범인밖에 없다. 범인을 제외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 9p.

연이어 두 명이 더 살해된다. 7명 중 한 명이 3명을 살해한 범인이다. 왜 살인을 했는지, 누가 살인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누군가 한 명이 남아서 바위를 치워야 한다면 살인범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나머지 6명은 생각한다. 범인을 찾고, 그 범인을 설득해 희생을 강요해야 한다.


누가 남을 것인가. 누구를 남길 것인가.

갇힌 사람들은 도덕과 정의를 생각한다. 3명을 죽인 살인범은 밖에 나가면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희생을 강요하는 자신들. 살인범이 이곳에 갇히면 얼마 안 가 그도 죽을 것이다. 자신들은 6분의 1의 살인은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은 점점 차올라 버틸 시간이 얼마 없다. 7일의 남은 시간 동안 살인범을 찾아 희생을 강요하거나 또다른 탈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상황이 급박해 지면서 내부 혼란이 찾아온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의심과 불안은 점점 커진다.

결국 남은 멤버들은 추리를 통해 범인을 찾아낸다. 그리고 범인은 저항 없이 바위를 치우고 자신이 남겠다고 한다. 그다음이 ‘충격적인 반전’이다. 뒷부분 10여 쪽에 6명을 감쪽같이 속이고 독자도 속이는 범인의 동기와 방법이 나온다. 

이 소설의 재미요소는 1)갇힌 공간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2)범인을 찾기 위한 추리, 3)서로를 의심하는 심리전, 4)살인범을 죽음으로 몰아야 하는 도덕과 정의의 문제, 그리고 5)멤버 6명과 독자를 충격에 빠뜨리는 대반전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소름이 돋는 작품’, '이 충격은 평생 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책장을 덮으면 비로소 알 수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시대적 광기가 낳은 두 남자의 숙명. 운명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두 남자. 둘을 연결하는 것은 시대적 광기, 맹목적인 과학자와 돈이면 뭐든 하는 기업의 그릇된 철학이었다. 두 남자는 시대의 아픔을 물려받았다.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시대적 광기가 낳은 두 남자의 숙명. 운명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권남희 / 소미미디어
宿命 / Keigo Higashino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권남희 / 소미미디어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권남희 / 소미미디어


오래전 작품이 다시 번역, 출간되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10년, 20년 전의 번역과 지금의 번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에 맞게 번역하고 새로운 독자들이 찾아 읽으면 작품의 생명이 계속 이어진다. 나도 개정판을 읽으면서 몰랐던 작품을 알게 된 경우가 많다. [숙명]이 그 예다. 개정판이 나오고서야 이런 책이 있는 줄 알았다. [숙명]은 2007년에 구혜영 번역으로 도서출판 창해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2020년에 권남희의 번역으로 재출간되었다. 

[숙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대표작 또는 인기작의 목록에서 보지 못했다. [숙명]은 작가가 1985년 [방과후]로 데뷔하고 5년 후(1990년)의 작품이니, 작가의 초기작품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초기작품이 미스터리에 집중했다면, 이후 사건의 원인, 인물관계, 범행의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작풍이 시작된다. 추리에서 이야기로 비중이 높아진다. [숙명]은 단순 미스터리를 넘어 다채로운 사건과 작풍으로 확장되는 시작점으로 평가받는다. 국내에는 늦게 소개되었다. 요즘은 작가의 이름값 덕분에 동시 출간된다. 

와쿠라 유사쿠와 우류 아키히코는 초등학교 입학 전 벽돌병원 뜰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을 시작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끊임없이 서로를 의식하는 라이벌 관계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졸업 후 형사와 살인사건 관련자라는 입장으로 만난다. 아키히코의 아버지이자 대기업의 회장인 스가이 마사키요가 독화살에 맞고 살해되는데, 아키히코는 용의자 중 한 명이다.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그들만의 관계. [숙명]은 두 사람을 둘러싼 숙명의 의외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나온다. 살인사건이 중심에 있지만, 사건은 의외로 일찍 해결된다. 사건보다는 두 인물의 관계, 그리고 30여 년 전의 배경이 촘촘히 얽혀있어서 추리소설이라고 한정하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마지막에 두 남자의 숙명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보여주는데, 충격이다. ‘숙명’이란 게 이런 거구나, 탄식하게 된다.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지금 내 인생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38p.

     ‘뭔가가 있어.’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을 때부터다. 그 이후로 그녀의 집안에 행운이 잇따랐다. 하지만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느꼈다. 뭔지 모를 거대한 힘이 늘 지켜보면서 조금이라도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종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43p.

작가는 30여 년 전에 이미 현대의학과 뇌신경과학의 소재를 다루었다. 최근에 나온 작품 중에 뇌신경을 다룬 작품들이 여럿 있는데 그 시작이라고 보면 되겠다. 거기에 전쟁 중 일본의 과학자, 의사들의 광기가 결합 되어 근원적인 배경을 만들게 되는데,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도 묵직하다. 과학과 의학이 잘못된 가치관을 갖게 된다면 벌어질 일들이, 그리고 그 피해를 받는 일반인들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지능장애가 어쩌면 실험 후유증이거나, 다른 이유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사나에도 원래는 평범한 여성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유사쿠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돈만 있으면 사람도 실험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에 대한 분노였다. - 399p.

시대적 광기가 낳은 숙명, 현대의학과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비밀, 복잡한 인간관계를 치밀하게 이끌고 있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 국내 독자들에게는 지명도가 낮은 작품이지만, 읽어보면 큰 비중을 두게 될 작품이다. 뇌과학과 관련해서는 작가의 작품 [위험한 비너스]와 결을 같이 한다.



숙명 - 어긋난 인연으로 만나게 되다니, 아무나 붙잡고 원망이라도 퍼붓고 싶군. 

널 만나기 훨씬 전부터 걔랑 기이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었거든. 말은 이렇게 해도 나에게는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지만. 말하자면 숙적... 이라고나 할까? 

중학교에서도 나는 그 녀석을 이길 수 없었어. 2등은 할 수 있지만 도저히 1등은 될 수 없었지. 모든 분야에서 그랬어. 전부 그 녀석 때문이었어. 주위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감탄했지만 한 번도 나 자신한테 만족한 적이 없었어. 전학을 가면 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 고등학교 시험도 아키히코가 들어간 곳으로 쳤어.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결과는 똑같았어.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았고 굴욕감만 쌓여갔지. 그 녀석한테 보기 좋게 당한 거야. 그것도 철저하게. 무슨 짓을 해도 그 녀석을 이길 수 없었으니까 포기했지. 어차피 대학도 다른 데로 갈 거니까 승부는 거기까지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3학년이 되고 나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었어. 우류가 의사가 되려고 도와 의과대학 시험을 본다잖아. 나랑 같은 학교를 지망한 거야. 불길하더라고. 이게 결정적인 승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과는 보기 좋게 그대로 된 거야. 걔는 합격, 나는 불합격... 널 만났던 것도 마침 그때였고...

신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이렇게나 어긋난 인연으로 만나게 되다니, 아무나 붙잡고 원망이라도 퍼붓고 싶군. - 187p. ~ 189p.

세상 끝 아케이드 – 작은 아케이드가 세상의 전부. 그러나 그 세상은 좁지 않다.

     그곳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케이드다. 아케이드라고 해도 되나 망설여질 정도였다. 어쩌면 아케이드라기보다 아무도 모르게 우연히 생겨난 세계의 우묵한 구멍이라고 표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 10p.

세상 끝 아케이드 – 작은 아케이드가 세상의 전부. 그러나 그 세상은 좁지 않다.


세상 끝 아케이드 / 오가와 요코 / 권영주 / 현대문학
最果てア-ケ-ド / Yoko Ogawa

세상 끝 아케이드 / 오가와 요코 / 권영주 / 현대문학



아케이드(arcade)는 아치형의 지붕이 덮인 통로에 상점들이 죽 들어서 있는 거리를 말한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 유튜브 영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아니지만 다양한 가게가 모여 있어 쇼핑이 편하다. 아케이드의 특성은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 주기도 하는데, 어떤 곳은 지역 명소가 되기도 한다. 

오가와 요코의 [세상 끝 아케이드]는 현실의 화려한 아케이드를 보여 주지 않는다. 오래되어 낡고 사람들 왕래가 뜸한 한적한 아케이드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상실’의 아픔을 안고 있다. 죽은 이의 기억이 담긴 물건을 사고, 슬픔을 풀어놓고, 위로받고 또 힘을 얻는다. 아케이드의 관리인이자 배달원인 ‘나’ 역시 아버지의 죽음을 아케이드에서 치유하며, ‘나’의 이야기와 상점 주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다양한 사연들이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격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인간 세상에서 작가는 다른 것 다 지우고 조용함과 농밀한 삶을 이끌어낸다. 정적이고 고립된 아케이드 속에서 ‘나’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경계를 허물며 넘나든다. 

아케이드 안에는 여러 상점이 있다. 그들은 물건에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는다. 그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을 세상에 내보이는 물건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안으로 들어가는 삶이다. 아케이드는 곧 그들만의 작은 세상을 이룬다.

     '대체 이런 걸 누가 사는데?' 싶은 물건을 다루는 가게들만 모여 있으니 어쩔 수 없으리라는 자각은 상점 주인들에게도 있다. 점포 입구는 어디나 그 이상 줄이려야 줄일 수 없을 만큼 좁다. 천장은 낮고, 안도 그렇게 넓지 않고, 쇼윈도는 모형 정원 정도의 공간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그런 소박함에 걸맞은 물품들을 취급한다. 사용된 그림엽서, 의안, 휘장, 태엽, 장난감 악기, 인형 전용 모자, 문손잡이, 화석, 하나같이 우묵한 구멍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 숨죽이고 있는 듯한 물건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손님은 온다. - 12p.

소설에는 10개의 아케이드 상점 이야기가 나온다.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때론 집안의 비극을, 개인의 아픔을, 쓸쓸함을 담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이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내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사는 것이 때론 힘들고 아프지만 잘 살아낼 수 있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니까. 다 읽고 나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활짝 펴진다. 용기를 얻는다.

     대학 노트가 한 권 한 권 글자로 메워지고, 연필은 몽땅하게 줄어들었다. 등이 쑤시고, 공책은 땀으로 축축하고, 눈도 가물거리지만, 신사 아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유도 생각하지 않고, 괜히 무리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을 형성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손에 들고 찬찬히 바라보며 감촉을 확인한 뒤 있던 곳에 되돌려놓는다. 그 일을 한없이 반복한다. 과거에 딸이 탐색했던 길을 따라가며 희미한 자취라도 남아 있지 않은지 자세히 살펴보고, 그 애가 그렇게 바랐어도 도달하지 못했던 길을 대신 밟는다. - '백과사전 소녀', 52p. ~ 53p.

의상 담당 / 백과사전 소녀 / 토끼 부인 / 고리 집 / 종이 상점 시스터 / 손잡이 씨 / 훈장 상점 미망인 / 유발 레이스 / 유괴범의 시계 / 포크댄스 발표회

오가와 요코의 작품 중 처음 읽은 책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었다. 특이한 성향의 작가다. 작가의 작품은 매우 정적이고 고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고요함은 쓸쓸함으로 이어지고 쓸쓸함은 슬픔으로 이어진다. 착 가라앉는 작품 성향이지만 의외로 따뜻한 정서를 담고 있다. 



유괴범의 시계 - 시간과 시간의 틈바구니에 귀 기울이고 싶다. 

아케이드에서 나와 바로 정면으로 전찻길 건너편에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다. 흰 문자판에 검은 숫자와 바늘 두 개. 쓸데없는 장식은 일절 없이 무덤덤하리만큼 실용성만 추구하는 크고 둥근 시계다.

예전에 이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목격한 아이는 유괴범에게 잡혀가 두 번 다시 못 돌아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모두 소문을 믿어 유괴범의 시계라고 부르며 무서워했고, 시계를 올려다보거나 그 아래를 지나치는 것조차 피했다.

물론 나도 문자판이 시야에 얼핏 들어오기만 해도 허둥지둥 눈을 감았고, 전찻길 건너편에 볼일이 있을 때는 일부러 멀리 떨어져 있는 횡단보도로 길을 건넜다. 아케이드에서 일직선으로 보이는 위치에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뭔지 모를 저주받은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아 더더욱 무서웠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좋으니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바늘은 천천히 기어가듯 움직일까, 아니면 재까닥 튀듯 앞으로 나아갈까. 시계 속에 손잡이 씨 가게에 있는 것 같은 작은 방이 있어, 그곳에 유괴범이 혼자 살고 있다. 기름통과 걸레를 들고 태엽을 닦는다. 그러면서 틈틈이 유괴하기에 안성맞춤인 어린애가 없는지 문자판의 작은 틈새로 물색한다. 바늘이 움직이는 순간, 공기의 작은 흔들림이 유괴범의 귀에 파동을 일으킨다. 나도 파동을 맛보고 싶다. 시간과 시간의 틈바구니에 귀 기울이고 싶다.

그랬건만 화재가 있은 뒤 무심코 시계에 눈을 주었다가 싱겁게 목격하고 말았다. 어렸을 때 상상했던 만큼 의미심장하지도 않고, 신비스럽지도 않고, 담담히, 당연하게, 그저 정해진 각도만큼 움직이고 끝이었다. - 195p. ~ 197p. ‘유괴범의 시계’ 중.

Things I love about May: Bee Gees, green oaks, fringe tree, and decent weather.

Things I love about May: Bee Gees, green oaks, fringe tree, and decent weather. First of May by Bee Gees.   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