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크사이드 – 자식의 명문대 입시와 얽힌 부정과 살인사건. 이를 덮으려는 부모들의 광기

레이크사이드 – 자식의 명문대 입시와 얽힌 부정과 살인사건. 이를 덮으려는 부모들의 광기


레이크사이드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하빌리스
Lakeside / Keigo Higashino

레이크사이드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하빌리스



이 책은 일본에서 2002년 출간된 책인데, 2019년 국내에 권일영 번역으로 소개되었다. 출판사, 번역가, 제목이 모두 바뀌었다. 예전의 책을 읽어봤다면 이번 번역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이 소설은 과중한 입시와 청소년, 부모의 문제를 다룬다. 최근에 불거진 학부모 갑질도 입시 문제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부모의 맹목적인 자식 사랑, 욕심과 광기, 인성 부족의 문제다.

동아시아 3국(한중일)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못해 광적이다. 그에 따른 사회문제도 심각하다. 입시과열에 의한 사회 혼탁, 경제적 비효율, 입시 비리 등등. 무엇보다도 수험생의 인권을 빼놓을 수 없다. 나미키(남편)는 이런 입시가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든다. 부모 마음대로 진로를 정해버리는 것이 과연 애들에게 좋은 일일까(20p).

호숫가 별장에 네 부부와 아이들, 그리고 학원 강사가 모인다. 명문대 입시를 위한 합숙 과외를 별장에 모여서 하는 것이다. 나미키는 이 모임이 탐탁지 않지만, 아들을 위해서, 그리고 아내(미나코)의 바람 때문에 참석한다. 그런데 회사의 내연녀(에리코)가 이곳에 도착하고, 나미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가 에리코를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건을 숨기려 한다.

     이번 일이 밝혀지면 아마 우리 사생활도 매스컴에 오르내리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아이들 입시는 엉망이 되겠죠. 사회적으로 타격을 입는 사람은 나미키 씨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 81p.

     미나코 씨를 살인범으로 만들지 않을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사건 그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시체를 처리하는 거죠. 우리 손으로(83p).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는 마음을 굳혔습니다만(88p).

표면적인 사건은 아내가 내연녀를 죽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숨기려는 사람들 또한 이상하다. 살인사건이다. 살인사건을 덮어줄 만큼 그들의 결속력이 강하다. 그들은 왜 살인사건을 덮으려는 것일까? 정말 아내가 에리코를 죽였나? 살인사건보다 더한 뭔가가 있는가? 나미키도 그들의 설득에 넘어가 살인사건을 숨기는 데 동조한다.

     댁들이 유난히 사이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러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는 아닐 텐데요. 살인사건이라 말이에요. 엄청난 범죄라고요. 그런 일이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당연할 텐데. - 184p.

사건은 급반전을 맞는다. 네 쌍의 부부는 무엇을 숨기려는 것일까? 모든 내막을 알게 된 나미키는 충격받고, 그들을 돕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미키가 경찰에 신고하는지, 계속 그들과 한 배를 타는지 열린 결말로 남는다.

     어쨌든 현재 저로서는 이제 협력할 수 없고 여러분을 도울 생각도 없습니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경찰에 연락할 일만 남았습니다. 물론 제 죄도 추궁을 받겠죠.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거짓말에 속아 공범자가 되느니 시체유기죄로 처벌받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 276p.

이 소설은 명문대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과 부모의 광적인 행동을 보여 준다. 과열 입시의 폐해와 그로 인한 사회문제(입시 부정)를 다룬다.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거기에 부부간의 도덕 문제도 얽혀있다. 자식 문제에 자유로운 부모는 없다. 자식을 위해서 도덕과 법을 무시한다.

   부모란 자식 일이라면 모든 걸 다 걸죠. 돈으로 합격시킨다는 게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결국은 그쪽으로 가게 됩니다. - 282p.

이 소설은 군더더기가 없다. 스토리 전개와 묘사, 그리고 대사까지. 묘사되는 행동과 에피소드들 모두가 허튼소리 하나 없이 전부 사건의 전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그래서 책 후반부를 읽으면서 다시 앞부분을 들춰보게 된다. 정말 대사 하나, 장면 묘사 하나가 사건의 단서가 된다. 그래서 책의 번역가(권일영)는 이 소설을 두고 ’콤팩트하다‘고 했다. 

당신에게 지금 꾸리고 있는 가정이란 무엇인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것입니까? - 106p.

2002년 출간된 책인데 입시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고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성공도 결국 가정의 토대 위에 이루어져야 한다. 가정이 깨지면 아무 소용도 없다.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보다 앞선다.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 도쿄 독립서점 ‘Title’을 운영하는 주인장의 책과 서점에 대한 생각.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 도쿄 독립서점 ‘Title’을 운영하는 주인장의 책과 서점에 대한 생각.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 도쿄 독립 서점 Title 이야기
쓰지야마 요시오 / 정수윤 / 돌베개
Chiisana Koe, Hikaru Tana / Yoshio Tsujiyama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 도쿄 독립 서점 Title 이야기 쓰지야마 요시오


저자는 도쿄에서 독립서점 ‘Title’을 운영한다. 서점은 대표적인 아날로그 업종이어서, 요즘 시대에 서점을 차리기 위해서 계획 세우고 판을 벌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서점이 필요한 사람과 지역이 있다. 시대가 바뀌면 철학도 바뀌어야 한다. 예전의 서점과 지금의 서점은 여러 면에서 달리해야 한다. 기존에 ‘책’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책을 찾는 사람’으로 관심을 옮겨야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서점을 열기 위해서 준비했던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서점 주인으로서 책과 서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많은 손님을 맞이한다. 그중에는 ‘단골’도 있는데,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 서로 안부를 묻는 단골 등 다양하다. 고령의 단골은 어느 날 세상을 떠나고 그 가족이 소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귀한 책을 구하는 손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손님 등 서점은 책을 구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동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찾는 서점인가’는 ‘어떤 책을 파는 서점인가’와 마찬가지로 서점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책을 진열해놓고 팔지만, 책보다는 유대관계가 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돈을 주고 필요한 물건을 사 가는 상거래 행위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이 모여들어 지역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세상살이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 일을 동네의 작은 서점들이 해나가길 저자는 바란다.

     우리는 소비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에 우리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해주는 장소가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중

코로나는 산업은 물론이고 모든 생활양식을 변화시켰다. 비대면의 시대에 서점 운영도 어려워지고, 유대관계도 느슨해졌다. 위기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마련이다. 지역의 독립서점으로서 코로나 이후의 사회를 준비하는 데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격리되고 비껴가더라도 사람과 온정을 나누고 관계를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점 주인, 단골손님, 이웃 모두에게 주어진 일이다. 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적응해나가야 한다. 

     ‘상점을 열다’, ‘상점을 이어가다’라는 말이 있듯, 일반적으로 ‘상점’이란 인간의 의지에 따른 산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래 지속하는 상점을 보면 찾아오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스스로 형태를 바꾸기도 하면서, 그 상점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가는 듯 보이기도 한다. - 210p.

서점이 위치한 도쿄의 골목 풍경, 서정적인 사진, 저자의 담담한 일상. 책의 분위기가 ‘서점’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지금 바쁘다면 잠시 쉬어갈 때이다. 서점은 바쁜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래서 서점이 필요하다.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세계 곳곳을 이어주는 통로, 공항에 대한 폭넓은 사색.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세계 곳곳을 이어주는 통로, 공항에 대한 폭넓은 사색.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의 현대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밖에 없을 것이다. - 16p.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알랭 드 보통 / 정역목 / 청미래
A Week at the Airport : A Heathrow Diary / Alain de Botton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알랭 드 보통 / 정역목 / 청미래



20대 후반, 직장에서 제주도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비행기를 그때 처음 타봤다. 공항에 처음 가봤다는 얘기다. 그 얘기를 들은 상사는 내게 말했다. 

“첫 비행기 여행은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지.”

큰 의미까지는 모르겠고, 일단 처음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 본 경험은 다른 경험과 비교할 수 없었다. ‘자주 비행기를 타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경험은 두고두고 내 입에 오르내리는 경험담 중 하나가 되었다.

단편적이지만 직업으로서 파일럿과 스튜어디스, 장소로서 공항은 모두 낭만적이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직업과 장소라는 점이 있어서, 선망의 직업이고 낭만적인 장소다. 공항엔 떠남과 도착, 만남과 이별이라는 행위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등장하는 공항은 그것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도 떠나고, 기다리고, 도착하는 공간이지만 공항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 공간의 스케일도 그렇고, 공항은 이곳과 저곳이 아닌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라는 느낌이다. 한번 떠나면 중간에 세울 수 없다는 점이 또 다르다. 그래서 공항에서의 떠남은 더 아쉽고, 기다림은 더 애틋하고, 만남은 더 감격스러운지도 모른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은 고국의 쿠데타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 머물게 된 이야기다. 영화는 공항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터미널]의 주인공 톰 행크스와는 달리 알랭 드 보통은 공항 측의 제안을 받아 일주일을 공항에서 머물게 된다. 그리고 공항에 대한 경험과 전체적인 인상을 작품으로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다. 

저자는 공항 내에 있는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고,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공간도 들어가 본다. 그리고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비행기 조종사와 승무원, 관제탑 직원, 보안 경비는 물론, 청소원, 식당 직원, 구두 닦는 사람까지. 공항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공항 이용객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공항을 마주하고 있다.

저자는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만난다. 한 명은 남고 한 명은 떠나는 연인들의 모습과 마중 나온 가족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여행객, 사업차 바삐 떠나는 비즈니스맨들의 모습도 책에 담는다. 무엇보다도 가족을 떠나고, 기다리고, 만나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본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을,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애틋하고 슬픈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항은 일반인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지만 작가에게도 많은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의 작품 중에 공항이 배경이 되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공항에서의 만남과 이별, 기다림은 인생에서의 만남과 이별, 기다림과 다르지 않다. 공항에 대한 동경과 현실, 그리고 폭넓은 사색. 저자는 공항과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낭만적으로 들려준다. 작가의 위트와 통찰력이 돋보인다.



     현대 사회에 널리 퍼진 이혼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공항에서 재결합하는 모습은 끊임없이 눈에 띈다. 이런 맥락에서 냉정하거나 금욕적인 척하는 것이 이제 소용없다. 지금은 연약하지만 통통한 어깨를 꼭 끌어안고 무너지며 눈물을 뿌리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에서는 힘과 강인함을 투사하며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지독하게 연약하고 위태로운 피조물들이다. 초조하게 텅 빈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는 남자들이 있다. 반년 동안 이 순간을 고대해온 남자들이다. 자신의 눈을 빼다 박은 듯 잿빛이 감도는 녹색 눈에 할머니의 뺨을 물려받은 작은 소년이 공항 직원의 손을 잡고 스테인리스스틸 문 뒤에서 나타나자 그들은 더 자제를 하지 못한다.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긴 세월이 흐른 뒤, 어른이 된 자식은 일상적인 출장을 떠나기 전에 늘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할 것이며, 그러다 집행유예는 어느 순간 끝이 날 것이다. 한밤중에 멜버른의 한 호텔의 20층에 있는 방으로 전화가 걸려와, 세계 반대편에서 아버지가 치명적인 발작을 일으켰으며, 의사들은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그날 이후 이제 어른이 된 소년은 도착 라운지에 늘어선 사람들 속에서 늘 빠져 있는 얼굴 하나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 192p.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시리즈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시리즈


에도가와 란포 / 도서출판b
Rampo Edogawa


1.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시리즈

1) D자카 살인사건 2) 난쟁이 3) 거미남 4) 엽기의 말로 5) 마술사 6) 황금가면 7) 흡혈귀 8) 인간표범 9) 대금괴 10) 괴인이십면상 11) 소년탐정단 12) 검은 도마뱀 13) 요괴박사 14) 암흑성 15) 악마의 문장 16) 지옥의 어릿광대


2. D자카 살인사건 -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집. 아케치 고고로 등장.


D자카 살인사건 - 에도가와 란포


일본 애니메이션 ‘소년탐정 김전일’에는 김전일의 라이벌인 아케치 형사가 나온다. ‘아케치’라는 이름을 그냥 붙였을 리는 없고, 그 유래가 궁금했는데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 속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를 보고서 알았다.

에도가와 란포(1894~1965)는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본명은 ‘히라이 타로’다. ‘에도가와 란포’는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미국의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에서 착안한 필명이다. 추리소설에는 명탐정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탐정의 활약으로 소설이 인기를 얻는다. 에도가와 란포는 초기 작품에서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를 등장시켰다. 아케치는 한 두 작품에 등장시킬 생각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그의 작품 다수에서 등장한다. 

국내에 소개된 일본의 소설 중 추리, 탐정 분야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일본의 초기 추리소설을 접할 기회는 별로 없다. 도서출판 b에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들 중에 아케치 고고로가 등장하는 작품들을 16권짜리 시리즈로 기획하였고, 2019년 12월 기준 두 권이 발행되었다. 에도가와 란포에 대한 입문으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권에는 [D자카 살인사건], [유령], [흑수단], [심리시험], [천장 위의 산책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거의 70, 80년 전의 작품이지만 요즘에 읽어도 트릭과 추리가 대단하다. 물론 요즘의 작품처럼 대작은 아니고 짧은 단편 위주다.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1, D자카 살인사건)

1권에 실린 다섯 편 중 [천장 위의 산책자]는 범죄에 흥미를 느끼는 광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는 범죄애호증이라고 하는데 요즘 말로 치면 ‘싸이코패스’ 쯤 되겠다. 유희로서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 작가는 그 당시에 이런 발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사부로라도 역시 법적으로 죄인이 되는 것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싫었습니다. 그는 부모나 형체, 친척, 지인들이 느낄 비탄과 모욕을 무시하면서까지 쾌락에 몰입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책을 보니 아무리 교묘한 범죄라도 반드시 어딘가는 어긋나서 그것이 범죄 발각의 단서가 되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생 경찰의 눈을 피해서 사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는 오직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그의 불행은 세상만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하필이면 ‘범죄’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보다 더 큰 불행은 범죄가 발각되는 것이 두려워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못한다는 것이었지요. - 158p. [천장 위의 산책자] 중.

작가는 괴기와 엽기, 에로티시즘, 환상성, 초자연성, 잔학성 등 매우 폭넓은 작품 활동을 했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 추리소설을 넘어 문학의 틀을 일구었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는 평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에도가와 란포로부터 시작한 일본의 추리소설은 오랜 기간 성장을 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는 추리소설 작가들은 모두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작가의 말]에는 에도가와 란포가 그의 작품들을 투고하고 단행본으로 발행하면서 썼던 작품 해설이 담겨있다. 여러 곳에 썼던 작가의 말을 한데 모아서 적어놓으니 하나의 기록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알 수 있다. 지금 읽는 과거의 추리소설은 신선함이 있다. 대가의 작품과 생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다.




3. 난쟁이 - 에도가와 란포의 중편, ‘난쟁이’와 ‘누구(何者)’


난쟁이 - 에도가와 란포


두 번째 시리즈 [난쟁이]에는 ‘난쟁이’와 ‘누구(何者)’ 두 편의 중편이 실려 있다. 두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이다. 우선 두 작품 모두 신문에 연재가 되었다. ‘난쟁이’는 신문사의 연재 일정에 공백이 생겨서 그것을 메우기 위해서 급하게 섭외가 된 것이고, ‘누구’는 시간 여유가 있었던 작품이다. ‘난쟁이’는 시간이 글쓰기에 촉박했던 탓에 아이디어를 내고 글 쓰느라 고생했지만, ‘누구’는 이야기가 술술 풀려 애먹지 않고 썼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난쟁이’를 쓴 이후에 본인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창피하다는 표현을 써가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반면 ‘누구’는 정통추리기법을 도입하는 등 추리소설로서 완성도가 높았다고 스스로 평했다. 하지만 저자의 뜻과는 반대로 대중은 ‘난쟁이’에 열광하고, ‘누구’에 대해서는 정통추리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는 무난한 작품이라고, 심하게 말하면 너무 정통이라 ‘시시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난쟁이’는 영화로도 세 번이나 만들어진다. ‘누구’는 이후에 에도가와 란포의 여러 수작 중 손에 꼽히는 작품이라고 대중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인정받는다.

[난쟁이]는 요즘에도 엽기적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 나온다.

     고바야시 몬조는 어느 날 밤 아사쿠사 공원에서 한 난쟁이를 목격한다. 그런데 그가 품에서 떨어뜨린 꾸러미에는 푸르스름하게 변한 사람의 팔이 들어 있었는데...

그 무렵 어느 사업가의 딸이 실종되고, 어느 백화점에서는 사람 팔 한쪽이 발견된다. 아케치 고고로는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로 연결되었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출생의 비밀, 실종, 살인, 시체 훼손, 유기 등 요즘에 나올 법한 강력범죄에 그 수법도 엽기적이다. 읽는 내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한 부분도 있어서 집중하며 읽게 된다. 아케치는 사람들을 탐문하고 증거를 분석한다. 그리고 진술과 증거 사이의 부조화를 찾아내 범인을 밝혀낸다.

     음악가가 불협화음에 민감한 것처럼 탐정은 사실의 부조화에 민감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종종 사소한 부조화의 발견이 추리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죠. - 167p.

후반부에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요즘 시대의 기준과는 다른 결말처리가 나온다. 아마도 저자는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창피하고 민망한 작품’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결말에 대해서는 독자의 판단에 맡겨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대’의 입장이다.

‘누구’는 밀실사건을 다룬다. 사건현장(방)으로 범인이 들어오고 나간 흔적은 있는데 건물 밖으로 빠져나간 흔적은 없다. 시작점과 도착점이 우물이다. 범인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탐정은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추리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쳐 범인을 찾아낸다. 불필요한 요소 없이 논리적인 추리를 바탕으로 수수께기를 풀어나간다. ‘에도가와 란포 본격추리의 결정판’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다. 현대 추리소설 작가들이 사용하는 방법들의 초기 버전 혹은 모델이 되겠다. 여기에서도 결론 부분에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범인은 당신입니다.’

1권에서 단편의 아기자기한 맛을 접했다면, 2권에서는 중편의 치밀함과 규모를 접할 수 있다. 더 복잡한 인간관계, 사건의 배경, 추리기법 등이 요즘 소설에 견주어도 대단하다. 좋은 독서 경험이다.

이웃집 방문 프로젝트 – 이웃집 문을 두드리는 용기, 그리고 찾아온 변화. 일상의 의미

이웃집 방문 프로젝트 – 이웃집 문을 두드리는 용기, 그리고 찾아온 변화. 일상의 의미


이웃집 방문 프로젝트 : 동네 사람에게 건넨 수제 케이크 200개의 기적

슈테파니 크비터러 / 김해생 / 문학동네
Hausbesuche: Wie ich mit 200 Kuchen meine Nachbarschaft eroberte 
Stephanie Quitterer

슈테파니 크비터러 / 김해생 / 문학동네



저자 슈테파니 크비터러는 출산 직전 남편을 따라 베를린 구동독 지역으로 이사 온다.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기는 쉽지 않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외롭고, 출산 직전이라 몸도 힘들다. 게다가 타지에서 온 이방인에 대해서 견제하고 배척하는 지역의 분위기는 독일 어느 곳보다도 심하다. 배척은 혐오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반사회적, 반인륜적 혐오가 인구 2만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출신 지역에 대한 혐오(저자는 독일 남부 출신이다), 임산부에 대한 혐오, 신입 주민에 대한 기득권 행사 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출신 지역을 일부러 숨기기도 한다. 

베를린같이 외지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곳에서 사투리를 쓰지 않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배타주의가 이토록 심할까? 스스로 베를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누가 순혈인가? 지역배타주의는 초등학생들의 말싸움만큼이나 유치한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 135p. 

저자는 이런 배타적인 지역 분위기에 답답해하면서, 이에 맞서기로 한다. 하다 안되면 다시 이사 가지 뭐. 하는 심정이다. 저자가 생각한 방법은 단순 무식하게, 이웃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빈손이 아니라 수제 케이크를 만들어서, 집에 방문하고 그들과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이웃집 방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간단히 블로그를 만들어 이 프로젝트 계획을 알리고, 매일 할당량의 방문을 마치고 그 결과를 기록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동네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200일 동안 200가정을 찾아가 티타임을 하는 프로젝트예요. 제가 직접 구운 케이크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이 동네 이야기며, 여기가 얼마나 변했는지 같은 이야기를요. 저와 함께 치즈케이크 한 조각 드시겠어요? - 56~57p.

남편 톰은 이 프로젝트를 반대한다. 우선 위험하다는 것이다. 배타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고,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찾아가는 것은 너무 무모한 짓이다. 그 집에 ‘연쇄 살인범’이 살고 있을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케이크를 만들 재료와 도구를 사고 연습 삼아 케이크를 구웠다. 친구들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응원을 한다. 

첫 방문은 실패였지만, 처음 남의 집에 문들 두드렸다는 것은 성공이다. 이에 용기를 얻어 다음부터 더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린다. 초기에는 대부분 바쁘다는 이유로 방문을 거절한다. 그런 중에도 잠깐이지만 시간을 내주는 주민이 있어,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런 프로젝트 이야기가 소문이 났는지 그다음부터는 방문에 호의적인 주민들이 많아졌다. 블로그를 보고 자신의 집에 와달라고 부탁하는 이웃들도 생겼다. 친구들의 반응도 좋았다.

나는 내 프로젝트를 사랑한다. 내 돋보기와 만화경을 사랑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난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날은 그 사람이 주인공이고, 그의 이야기가 가장 중심이 되며, 유일하게 중요한 주제가 된다. 주인공과 함께 주요 장면에 출연하는 일이 즐겁다. - 157p. 

하루하루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삶을 알아간다. 이웃의 이야기는 곧 지역의 이야기가 된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금의 마을인 것이다. 새로 지은 아파트가 낡아가고, 재건축을 한 아파트가 옆에 세워진다. 거리의 변화된 모습,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 남녀가 서로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 이야기까지 모두 한곳에 모으면 대하소설이 따로 없다. 

재미있는 이야기만 오고가는 것이 아니다. 집안의 슬픈 이야기, 이웃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듣는다. 어린 아들을 잃고, 이곳 공동묘지에 아들을 묻은 어느 주민은 이사를 못가고 여전히 이 동네에서 살고 있다. 이 지역에서 여전히 이방인처럼 느껴지지만, 매일 아침 해 뜨는 것을 보고, 공동묘지에 묻은 아들을 생각하고, 매일 일하러 간다. 매번 방문을 거절한 어느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 노인은 매우 가난했다. 변변찮은 살림을 보여주기 싫어서 사람을 집으로 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 일로 저자는 프로젝트에만 정신이 팔린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이웃에 대한 세심함이 부족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일 큰 변화는 길거리에서 인사를 하는 주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섞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들도 다른 집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 일을 저자의 블로그에 알려주었다. 자신이 남의 집을 방문하자, 남들도 또다른 집에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은 더욱더 활발해졌다. 저자의 이웃집 방문을 돕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케이크 재료를 보내주기도 하고, 저자가 몸이 안 좋을 때 대신 남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동네 분위기가 갑자기 밝아졌다. 길을 걸을 때면 트램펄린 위에서 통통 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톰은 지인들과 통화를 할 때마다 “우리집에 케이크 먹으러 한번 들러요” 같은 다정한 말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래서 케이크는 하루에 한 개만 구워서는 모자라게 되었다. - 159p.

이렇게 해서 저자는 2893번 초인종을 누르고, 130집을 방문했다. 프로젝트 기간은 120일이었다. 200개의 케이크를 굽고 200명을 만났다. 프로젝트는 성공이다. 이웃집 방문이라는 작은 행동으로 지역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을 헤쳐나갈 희망을 본 것이다. 약한 연결이 모이면, 작은 연대가 되고 이것은 강한 힘을 갖는다. 지역이 살아갈 현명한 자세다. 이에 저자는 다음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바로 이웃을 초대하는 일이다. 방문이 아닌 초대!

다음 프로젝트는 이웃을 초대하는 일



하야부사 소방단 - 산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 방화사건. 그 배후를 파헤치는 미스터리 작가의 활약

하야부사 소방단 - 산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 방화사건. 그 배후를 파헤치는 미스터리 작가의 활약


하야부사 소방단 / 이케이도 준 / 천선필 / 소미미디어
ハヤブサ消防團 / Jun Ikeido, いけいど じゅん, 池井戶 潤

하야부사 소방단 / 이케이도 준 / 천선필 / 소미미디어



[하야부사 소방단]은 작가 이케이도 준의 2023년 최신작이다. 드라마로 제작되어 2023년 7월 일본에서 방영하고, 국내에도 8월부터 케이블TV에서 방영하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책을 읽게 되었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 드라마는 중반부를 넘어섰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드라마 속에서 보이는 자연경관이 멋지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풍경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와 소설, 두 배의 재미를 느낀다. 

     하늘 가득 뜬 별이 조용히, 소리도 없이 움직이고 있다. 아무리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밤하늘이다. 도쿄에서는 이렇게까지 맑은 하늘을 볼 수가 없다. 별들은 밝은 하늘의 상자에 박힌 채, 마치 생명이 깃든 것처럼 반짝이고 있다. 나무들을 흔들고, 이른 봄의 싸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쓰다듬는데도 불구하고 미마 다로는 2층 베란다에서 하늘을 계속 올려다보고 있었다. - 9p. 

미스터리 작가 미마 다로는 도쿄 생활을 접고 아버지의 고향 하야부사로 이사를 한다. 시골엔 사람이 적어서 대부분의 일을 마을 주민들이 모여 해결해야 한다. 하야부사 소방단은 그런 일을 하는 자치회다. 화재 예방, 진압, 야간 순찰, 경비 등의 일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로는 소방단에 가입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 화재가 일어난다. 다로는 이 화재가 처음이 아니라 연쇄 방화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서로 잘 아는 작은 마을이기에 누군가를 의심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방화범이라 지목되는 사람이 있다. 어디서 출발했는지 몇몇 의혹이 히로노부를 범인으로 내몰았다. 얼마후 히로노부는 실종되고, 계곡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마을 주민은 히로노부가 연쇄 방화범이고, 수사가 진행되니까 자살했다고 추측한다. 그런데 또 방화사건이 일어난다. 

     집이 불탄 게 아니에요. 인생의 일부가 불탄 거라고요. - 256

그동안 일어났던 방화사건에 대해서 의심을 품은 다로는 화재가 난 집의 공통점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 업체가 연관되었음을 알게 된다. 업체가 마을에서 영업을 시작한 이후 방화사건이 일어났고, 화재가 난 집이 소유한 땅을 그 업체가 매입한 사실을 알아낸다. 기업이 영업 행위에 방해가 된 집에 일부러 불을 냈다는 의혹이 일고 다로가 찾은 증거들도 그 사실을 뒷받침했다. 또다른 공통점은 불탄 집 모두 마을에 있는 절에 고액의 시주를 했다는 것이다.

마을에는 2년 전에 이주한 영상 크리에이터 다치키 아야가 있다. 아야는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찍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그리고 극본을 다로에게 의뢰한다. 다로는 극본을 쓰고, 아야는 드라마를 찍으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방화 연쇄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업체의 배후에 과거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흥종교집단이 있음을 알아낸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은, 다치키 아야가 그 종교 집단의 신자이며 핵심 직책을 맡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다로는 상황이 복잡해졌다. 종교집단은 범죄행위로 공중분해가 되었지만, 아직 신자들이 남아있었고, 그들은 조직을 재건한다. 그들의 성지를 하야부사에 만들기 위해 땅을 사는 과정에서 방화사건을 일으킨다. 여기까지 정리가 된다. 그럼 아야는 어디까지 관여하고 있는 것인가.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람, 가장 믿어야 하는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다로는 ‘왜 하야부사인가?’라는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알아낸다. 집안의 몰락으로 인한 상처, 한, 의무, 염원,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하야부사에 파도를 일으킨 것이다. 

     인생에는 때로 신의 안배라는 생각이 드는 우연이 찾아오는 법이다. - 671p. 

마지막에 살인과 방화를 일으킨 범인을 잡는다. 다로 혼자가 아니라 하야부사 소방단의 힘으로. 하야부사는 우리 하야부사 분단이 지켜야 한다(632p). 다로가 처음 하야부사에 와서 소방단에 들어갔을 때 소방단 사람이 했던 말이다. 자신이 사는 마을을 지키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다. 마을을 발전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야부사 소방단]은 재미도 있지만, 농촌이 처한 현실을 보여 주기도 한다. 논과 밭, 산에 무분별하게 들어선 태양광 패널. 그로 인한 환경 파괴와 경관 훼손. 땅을 판 주민과 이익을 얻은 기업. 인구가 줄어들어서 기반 시설 유지가 어려운 지역의 문제 등을 보여 준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주민의 연대, 애향심도 소설에서 볼 수 있다. 

등장인물의 대화에서 볼 수 있는 코믹, 방화범을 찾는 추리, 다로와 아야의 로맨스, 산골 마을에서의 일상이 잘 어우러진 재미난 소설이다. 700여 쪽의 분량이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다. 이야기에 빠져들어 몰입해 읽을 수 있다.

     하야부사 소방단 = 코믹 + 추리 + 로맨스 + 전원 소설.



87세 할머니의 간소한 홀로 라이프 -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 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그 공간에는 한 사람의 삶 전체가 온전히, 켜켜이 쌓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오래된 물건에는 스토리가 쌓이게 마련이듯이, 물 끓이는 주전자 하나, 전화기를 덮은 천 조각 하나조차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87세 할머니의 간소한 홀로 라이프 -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 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 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 타라 미치코 / 김지혜 / 더난출판사
87歲,古い團地で愉しむひとりの暮らし / 多良美智子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 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오래된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는 87세의 할머니. 손자의 도움으로 유튜브를 운영하며, 노년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결혼할 때 남편은 딸이 하나 있었다. 이후 아들 둘을 낳았다. 세 남매는 모두 독립을 하고, 남편은 7년 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결혼 후 장만한 작은 아파트에서 55년을 살고 있다. 자식에게 의지하여 살 법도 한데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고집한다. 오래된 집을 떠나지 않는 것은 할아버지 생각과 가정을 꾸려 온 보금자리라는 의미 때문이다. 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모든 물건은 할머니의 인생은 물론 가족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노년의 삶은 간소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정적이어서도 안된다. 할머니는 늘 배우려 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교육강좌를 찾아 배우고, 사람들과 번거롭지 않은 범위에서 교류한다. 노년의 생활은 젊을 때와 모든 면에서 다르다. 먹는 것, 입는 것, 움직이는 것 모두 바뀌어야 한다. 제때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삶의 엇박자가 일어난다. 가장 큰 변화는 ‘욕심’을 버리는 일이다. 욕심을 버려야 천천히 움직이고, 적게 갖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노년을 누릴 수 있다. 

할머니는 노년의 간소한 삶을 보여 준다. 일어나서 간단히 움직이고,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하고, 늘 정해진 일과를 하나씩 처리해 나간다. 혼자 살면 외로울 것이라는 편견에 할머니는 혼자라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책을 읽다 보면 느림의 여유, 적게 소유한 살림, 노년의 호기심 등이 와 닿는다. 내가 나이를 먹어 할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사는 모습이 어떨지 생각해 본다. 그러면 할머니의 생활이 눈에 들어오고 부러운 생각이 든다. 이렇게 멋진 삶을 살 수 있을까.

     나의 아침은 바닐라입니다. 은은한 달콤함이 내 몸을 깨웁니다. 나의 점심은 오트밀입니다. 건강한 에너지로 내 몸을 채워줍니다. 나의 저녁은 위스키입니다. 딱 한 잔으로 긴긴 어두운 밤도 훈훈해집니다. 그리고 하루의 끝은 레몬식초 2큰술입니다. 더 환한 얼굴로 일어날 다음 날을 기대합니다. 

노년은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노년의 능숙함 덕분이다. 서두르지 않고, 망설이지 않는다. 젊은이의 단점을 연륜으로 극복한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사소함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작은 것에 집중해야 한다. 노년은 살아온 날보다 남은 생이 훨씬 적어서, 아쉬움과 두려움이 생길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매 순간 집중하며 사소한 것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남은 생이 더욱 기대된다. 

오래전에 읽은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가 생각난다. 여든이 넘은 노부부의 삶을 보여 주는 책이다.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 평온함을 이 책에서도 느낀다. 그때보다 10살 더 먹은 내 모습에서 내 노년의 모습이 어떨지, 이분들처럼 나도 행복하고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Things I love about May: Bee Gees, green oaks, fringe tree, and decent weather.

Things I love about May: Bee Gees, green oaks, fringe tree, and decent weather. First of May by Bee Gees.   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