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方舟) –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모두 당했다.

지하 건물에 10명이 고립되고 3명이 살해된다. 7명 중 한 명이 범인이다. 범인을 희생시켜 나머지 6명이 건물을 탈출해야 한다. 범인은 누구인가. 범인은 자신을 희생할 것인가.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 범인만 살아남는다?

방주(方舟) –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모두 당했다. 


방주(方舟)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블루홀6 
方舟 / 夕木 春央, Haruo Yuki

방주(方舟)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블루홀6



작가 유키 하루오를 눈여겨봐야겠다. 1993년생인 저자는 올해 30살이고 [방주] 이전에 두 작품을 선보였다. [방주]의 추리와 반전이 대단하다. 이 책의 번역가 김은모는 '10년간 많은 본격 미스터리 소설을 번역해 왔지만 마지막에 이렇게까지 소름이 돋는 작품은 없었다'고 극찬을 했다. 번역가의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 반전이 대단하다. 일본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이 충격은 평생 간다'고 했다. 이러한 평은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납득할 수 있다. 당분간 이런 반전은 나오지 않을 듯싶다.

이 소설은 클로즈드서클(closed circle)물이다. 추리소설에서 ‘클로즈드서클’은 외부와 단절된, 고립된 장소를 뜻한다. 외딴 섬, 눈 속에 갇힌 산장, 비행기, 배, 입구가 막힌 건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제목 ‘방주’는 성경에 나오는 배인데, 적절한 제목이다. 이렇듯 고립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이 클로즈드서클물이다. 어느 정도 설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한 분야가 되겠다. 

등산동호회 친구 6명과 멤버의 사촌은 친구의 별장에 놀러왔다가 특이한 건물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기로 한다. 지하 10미터 아래 3층 구조로 지어진 건물은 흡사 배 모양을 닮았다. 그리고 산에서 길을 잃은 한 가족 3명이 찾아든다. 늦은 시간이라 10명은 건물에서 머물고 다음날 떠나기로 하는데, 간밤에 지진이 일어나 건물의 입구가 큰 바위에 막힌다. 이 바위는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이전 건물 사용자들이 만들어둔 것이다. 출구는 지하 3층의 반대편에 있는데 물에 잠겨있다. 10명은 건물에 고립된 것이다.

이 건물을 소개한 ‘유야’가 살해당한다. 이곳에 갇힌 사고의 출발은 ‘유야’였다. 건물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도 멤버들이 이곳에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9명은 사고의 책임을 유야에게 돌리고 있었다. 그러니 누군가 앙심을 품고 살해했을 것이다. 누가 범인인지 모른다.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를 치워야 한다. 바위를 입구 아래로 떨어뜨릴 방법이 있지만, 누군가 바위 아래 갇혀야 한다. 즉, 9명 중 한 명이 희생해서 나머지 8명을 살려야 한다.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산속에 묻힌 이 화물선 같은 지하 건축물에서 탈출하려면 아홉 명 중 누군가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하니까. 우리는 희생양을 선택해야 한다. 아니면 모두 죽는다. 어떻게 선택할까? 아홉 명 중 죽어도 되는 사람은, 죽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건 그를 죽인 범인밖에 없다. 범인을 제외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 9p.

연이어 두 명이 더 살해된다. 7명 중 한 명이 3명을 살해한 범인이다. 왜 살인을 했는지, 누가 살인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누군가 한 명이 남아서 바위를 치워야 한다면 살인범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나머지 6명은 생각한다. 범인을 찾고, 그 범인을 설득해 희생을 강요해야 한다.


누가 남을 것인가. 누구를 남길 것인가.

갇힌 사람들은 도덕과 정의를 생각한다. 3명을 죽인 살인범은 밖에 나가면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희생을 강요하는 자신들. 살인범이 이곳에 갇히면 얼마 안 가 그도 죽을 것이다. 자신들은 6분의 1의 살인은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은 점점 차올라 버틸 시간이 얼마 없다. 7일의 남은 시간 동안 살인범을 찾아 희생을 강요하거나 또다른 탈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상황이 급박해 지면서 내부 혼란이 찾아온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의심과 불안은 점점 커진다.

결국 남은 멤버들은 추리를 통해 범인을 찾아낸다. 그리고 범인은 저항 없이 바위를 치우고 자신이 남겠다고 한다. 그다음이 ‘충격적인 반전’이다. 뒷부분 10여 쪽에 6명을 감쪽같이 속이고 독자도 속이는 범인의 동기와 방법이 나온다. 

이 소설의 재미요소는 1)갇힌 공간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2)범인을 찾기 위한 추리, 3)서로를 의심하는 심리전, 4)살인범을 죽음으로 몰아야 하는 도덕과 정의의 문제, 그리고 5)멤버 6명과 독자를 충격에 빠뜨리는 대반전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소름이 돋는 작품’, '이 충격은 평생 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책장을 덮으면 비로소 알 수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시대적 광기가 낳은 두 남자의 숙명. 운명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두 남자. 둘을 연결하는 것은 시대적 광기, 맹목적인 과학자와 돈이면 뭐든 하는 기업의 그릇된 철학이었다. 두 남자는 시대의 아픔을 물려받았다.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시대적 광기가 낳은 두 남자의 숙명. 운명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권남희 / 소미미디어
宿命 / Keigo Higashino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권남희 / 소미미디어

숙명 / 히가시노 게이고 / 권남희 / 소미미디어


오래전 작품이 다시 번역, 출간되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10년, 20년 전의 번역과 지금의 번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에 맞게 번역하고 새로운 독자들이 찾아 읽으면 작품의 생명이 계속 이어진다. 나도 개정판을 읽으면서 몰랐던 작품을 알게 된 경우가 많다. [숙명]이 그 예다. 개정판이 나오고서야 이런 책이 있는 줄 알았다. [숙명]은 2007년에 구혜영 번역으로 도서출판 창해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2020년에 권남희의 번역으로 재출간되었다. 

[숙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대표작 또는 인기작의 목록에서 보지 못했다. [숙명]은 작가가 1985년 [방과후]로 데뷔하고 5년 후(1990년)의 작품이니, 작가의 초기작품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초기작품이 미스터리에 집중했다면, 이후 사건의 원인, 인물관계, 범행의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작풍이 시작된다. 추리에서 이야기로 비중이 높아진다. [숙명]은 단순 미스터리를 넘어 다채로운 사건과 작풍으로 확장되는 시작점으로 평가받는다. 국내에는 늦게 소개되었다. 요즘은 작가의 이름값 덕분에 동시 출간된다. 

와쿠라 유사쿠와 우류 아키히코는 초등학교 입학 전 벽돌병원 뜰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을 시작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끊임없이 서로를 의식하는 라이벌 관계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졸업 후 형사와 살인사건 관련자라는 입장으로 만난다. 아키히코의 아버지이자 대기업의 회장인 스가이 마사키요가 독화살에 맞고 살해되는데, 아키히코는 용의자 중 한 명이다.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그들만의 관계. [숙명]은 두 사람을 둘러싼 숙명의 의외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나온다. 살인사건이 중심에 있지만, 사건은 의외로 일찍 해결된다. 사건보다는 두 인물의 관계, 그리고 30여 년 전의 배경이 촘촘히 얽혀있어서 추리소설이라고 한정하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마지막에 두 남자의 숙명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보여주는데, 충격이다. ‘숙명’이란 게 이런 거구나, 탄식하게 된다.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지금 내 인생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38p.

     ‘뭔가가 있어.’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을 때부터다. 그 이후로 그녀의 집안에 행운이 잇따랐다. 하지만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느꼈다. 뭔지 모를 거대한 힘이 늘 지켜보면서 조금이라도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종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43p.

작가는 30여 년 전에 이미 현대의학과 뇌신경과학의 소재를 다루었다. 최근에 나온 작품 중에 뇌신경을 다룬 작품들이 여럿 있는데 그 시작이라고 보면 되겠다. 거기에 전쟁 중 일본의 과학자, 의사들의 광기가 결합 되어 근원적인 배경을 만들게 되는데,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도 묵직하다. 과학과 의학이 잘못된 가치관을 갖게 된다면 벌어질 일들이, 그리고 그 피해를 받는 일반인들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지능장애가 어쩌면 실험 후유증이거나, 다른 이유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사나에도 원래는 평범한 여성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유사쿠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돈만 있으면 사람도 실험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에 대한 분노였다. - 399p.

시대적 광기가 낳은 숙명, 현대의학과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비밀, 복잡한 인간관계를 치밀하게 이끌고 있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 국내 독자들에게는 지명도가 낮은 작품이지만, 읽어보면 큰 비중을 두게 될 작품이다. 뇌과학과 관련해서는 작가의 작품 [위험한 비너스]와 결을 같이 한다.



숙명 - 어긋난 인연으로 만나게 되다니, 아무나 붙잡고 원망이라도 퍼붓고 싶군. 

널 만나기 훨씬 전부터 걔랑 기이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었거든. 말은 이렇게 해도 나에게는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지만. 말하자면 숙적... 이라고나 할까? 

중학교에서도 나는 그 녀석을 이길 수 없었어. 2등은 할 수 있지만 도저히 1등은 될 수 없었지. 모든 분야에서 그랬어. 전부 그 녀석 때문이었어. 주위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감탄했지만 한 번도 나 자신한테 만족한 적이 없었어. 전학을 가면 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 고등학교 시험도 아키히코가 들어간 곳으로 쳤어.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결과는 똑같았어.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았고 굴욕감만 쌓여갔지. 그 녀석한테 보기 좋게 당한 거야. 그것도 철저하게. 무슨 짓을 해도 그 녀석을 이길 수 없었으니까 포기했지. 어차피 대학도 다른 데로 갈 거니까 승부는 거기까지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3학년이 되고 나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었어. 우류가 의사가 되려고 도와 의과대학 시험을 본다잖아. 나랑 같은 학교를 지망한 거야. 불길하더라고. 이게 결정적인 승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과는 보기 좋게 그대로 된 거야. 걔는 합격, 나는 불합격... 널 만났던 것도 마침 그때였고...

신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이렇게나 어긋난 인연으로 만나게 되다니, 아무나 붙잡고 원망이라도 퍼붓고 싶군. - 187p. ~ 189p.

세상 끝 아케이드 – 작은 아케이드가 세상의 전부. 그러나 그 세상은 좁지 않다.

     그곳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케이드다. 아케이드라고 해도 되나 망설여질 정도였다. 어쩌면 아케이드라기보다 아무도 모르게 우연히 생겨난 세계의 우묵한 구멍이라고 표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 10p.

세상 끝 아케이드 – 작은 아케이드가 세상의 전부. 그러나 그 세상은 좁지 않다.


세상 끝 아케이드 / 오가와 요코 / 권영주 / 현대문학
最果てア-ケ-ド / Yoko Ogawa

세상 끝 아케이드 / 오가와 요코 / 권영주 / 현대문학



아케이드(arcade)는 아치형의 지붕이 덮인 통로에 상점들이 죽 들어서 있는 거리를 말한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 유튜브 영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아니지만 다양한 가게가 모여 있어 쇼핑이 편하다. 아케이드의 특성은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 주기도 하는데, 어떤 곳은 지역 명소가 되기도 한다. 

오가와 요코의 [세상 끝 아케이드]는 현실의 화려한 아케이드를 보여 주지 않는다. 오래되어 낡고 사람들 왕래가 뜸한 한적한 아케이드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상실’의 아픔을 안고 있다. 죽은 이의 기억이 담긴 물건을 사고, 슬픔을 풀어놓고, 위로받고 또 힘을 얻는다. 아케이드의 관리인이자 배달원인 ‘나’ 역시 아버지의 죽음을 아케이드에서 치유하며, ‘나’의 이야기와 상점 주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다양한 사연들이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격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인간 세상에서 작가는 다른 것 다 지우고 조용함과 농밀한 삶을 이끌어낸다. 정적이고 고립된 아케이드 속에서 ‘나’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경계를 허물며 넘나든다. 

아케이드 안에는 여러 상점이 있다. 그들은 물건에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는다. 그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을 세상에 내보이는 물건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안으로 들어가는 삶이다. 아케이드는 곧 그들만의 작은 세상을 이룬다.

     '대체 이런 걸 누가 사는데?' 싶은 물건을 다루는 가게들만 모여 있으니 어쩔 수 없으리라는 자각은 상점 주인들에게도 있다. 점포 입구는 어디나 그 이상 줄이려야 줄일 수 없을 만큼 좁다. 천장은 낮고, 안도 그렇게 넓지 않고, 쇼윈도는 모형 정원 정도의 공간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그런 소박함에 걸맞은 물품들을 취급한다. 사용된 그림엽서, 의안, 휘장, 태엽, 장난감 악기, 인형 전용 모자, 문손잡이, 화석, 하나같이 우묵한 구멍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 숨죽이고 있는 듯한 물건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손님은 온다. - 12p.

소설에는 10개의 아케이드 상점 이야기가 나온다.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때론 집안의 비극을, 개인의 아픔을, 쓸쓸함을 담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이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내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사는 것이 때론 힘들고 아프지만 잘 살아낼 수 있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니까. 다 읽고 나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활짝 펴진다. 용기를 얻는다.

     대학 노트가 한 권 한 권 글자로 메워지고, 연필은 몽땅하게 줄어들었다. 등이 쑤시고, 공책은 땀으로 축축하고, 눈도 가물거리지만, 신사 아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유도 생각하지 않고, 괜히 무리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을 형성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손에 들고 찬찬히 바라보며 감촉을 확인한 뒤 있던 곳에 되돌려놓는다. 그 일을 한없이 반복한다. 과거에 딸이 탐색했던 길을 따라가며 희미한 자취라도 남아 있지 않은지 자세히 살펴보고, 그 애가 그렇게 바랐어도 도달하지 못했던 길을 대신 밟는다. - '백과사전 소녀', 52p. ~ 53p.

의상 담당 / 백과사전 소녀 / 토끼 부인 / 고리 집 / 종이 상점 시스터 / 손잡이 씨 / 훈장 상점 미망인 / 유발 레이스 / 유괴범의 시계 / 포크댄스 발표회

오가와 요코의 작품 중 처음 읽은 책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었다. 특이한 성향의 작가다. 작가의 작품은 매우 정적이고 고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고요함은 쓸쓸함으로 이어지고 쓸쓸함은 슬픔으로 이어진다. 착 가라앉는 작품 성향이지만 의외로 따뜻한 정서를 담고 있다. 



유괴범의 시계 - 시간과 시간의 틈바구니에 귀 기울이고 싶다. 

아케이드에서 나와 바로 정면으로 전찻길 건너편에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다. 흰 문자판에 검은 숫자와 바늘 두 개. 쓸데없는 장식은 일절 없이 무덤덤하리만큼 실용성만 추구하는 크고 둥근 시계다.

예전에 이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목격한 아이는 유괴범에게 잡혀가 두 번 다시 못 돌아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모두 소문을 믿어 유괴범의 시계라고 부르며 무서워했고, 시계를 올려다보거나 그 아래를 지나치는 것조차 피했다.

물론 나도 문자판이 시야에 얼핏 들어오기만 해도 허둥지둥 눈을 감았고, 전찻길 건너편에 볼일이 있을 때는 일부러 멀리 떨어져 있는 횡단보도로 길을 건넜다. 아케이드에서 일직선으로 보이는 위치에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뭔지 모를 저주받은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아 더더욱 무서웠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좋으니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바늘은 천천히 기어가듯 움직일까, 아니면 재까닥 튀듯 앞으로 나아갈까. 시계 속에 손잡이 씨 가게에 있는 것 같은 작은 방이 있어, 그곳에 유괴범이 혼자 살고 있다. 기름통과 걸레를 들고 태엽을 닦는다. 그러면서 틈틈이 유괴하기에 안성맞춤인 어린애가 없는지 문자판의 작은 틈새로 물색한다. 바늘이 움직이는 순간, 공기의 작은 흔들림이 유괴범의 귀에 파동을 일으킨다. 나도 파동을 맛보고 싶다. 시간과 시간의 틈바구니에 귀 기울이고 싶다.

그랬건만 화재가 있은 뒤 무심코 시계에 눈을 주었다가 싱겁게 목격하고 말았다. 어렸을 때 상상했던 만큼 의미심장하지도 않고, 신비스럽지도 않고, 담담히, 당연하게, 그저 정해진 각도만큼 움직이고 끝이었다. - 195p. ~ 197p. ‘유괴범의 시계’ 중.

레이크사이드 – 자식의 명문대 입시와 얽힌 부정과 살인사건. 이를 덮으려는 부모들의 광기

레이크사이드 – 자식의 명문대 입시와 얽힌 부정과 살인사건. 이를 덮으려는 부모들의 광기


레이크사이드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하빌리스
Lakeside / Keigo Higashino

레이크사이드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하빌리스



이 책은 일본에서 2002년 출간된 책인데, 2019년 국내에 권일영 번역으로 소개되었다. 출판사, 번역가, 제목이 모두 바뀌었다. 예전의 책을 읽어봤다면 이번 번역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이 소설은 과중한 입시와 청소년, 부모의 문제를 다룬다. 최근에 불거진 학부모 갑질도 입시 문제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부모의 맹목적인 자식 사랑, 욕심과 광기, 인성 부족의 문제다.

동아시아 3국(한중일)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못해 광적이다. 그에 따른 사회문제도 심각하다. 입시과열에 의한 사회 혼탁, 경제적 비효율, 입시 비리 등등. 무엇보다도 수험생의 인권을 빼놓을 수 없다. 나미키(남편)는 이런 입시가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든다. 부모 마음대로 진로를 정해버리는 것이 과연 애들에게 좋은 일일까(20p).

호숫가 별장에 네 부부와 아이들, 그리고 학원 강사가 모인다. 명문대 입시를 위한 합숙 과외를 별장에 모여서 하는 것이다. 나미키는 이 모임이 탐탁지 않지만, 아들을 위해서, 그리고 아내(미나코)의 바람 때문에 참석한다. 그런데 회사의 내연녀(에리코)가 이곳에 도착하고, 나미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가 에리코를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건을 숨기려 한다.

     이번 일이 밝혀지면 아마 우리 사생활도 매스컴에 오르내리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아이들 입시는 엉망이 되겠죠. 사회적으로 타격을 입는 사람은 나미키 씨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 81p.

     미나코 씨를 살인범으로 만들지 않을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사건 그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시체를 처리하는 거죠. 우리 손으로(83p).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는 마음을 굳혔습니다만(88p).

표면적인 사건은 아내가 내연녀를 죽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숨기려는 사람들 또한 이상하다. 살인사건이다. 살인사건을 덮어줄 만큼 그들의 결속력이 강하다. 그들은 왜 살인사건을 덮으려는 것일까? 정말 아내가 에리코를 죽였나? 살인사건보다 더한 뭔가가 있는가? 나미키도 그들의 설득에 넘어가 살인사건을 숨기는 데 동조한다.

     댁들이 유난히 사이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러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는 아닐 텐데요. 살인사건이라 말이에요. 엄청난 범죄라고요. 그런 일이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당연할 텐데. - 184p.

사건은 급반전을 맞는다. 네 쌍의 부부는 무엇을 숨기려는 것일까? 모든 내막을 알게 된 나미키는 충격받고, 그들을 돕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미키가 경찰에 신고하는지, 계속 그들과 한 배를 타는지 열린 결말로 남는다.

     어쨌든 현재 저로서는 이제 협력할 수 없고 여러분을 도울 생각도 없습니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경찰에 연락할 일만 남았습니다. 물론 제 죄도 추궁을 받겠죠.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거짓말에 속아 공범자가 되느니 시체유기죄로 처벌받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 276p.

이 소설은 명문대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과 부모의 광적인 행동을 보여 준다. 과열 입시의 폐해와 그로 인한 사회문제(입시 부정)를 다룬다.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거기에 부부간의 도덕 문제도 얽혀있다. 자식 문제에 자유로운 부모는 없다. 자식을 위해서 도덕과 법을 무시한다.

   부모란 자식 일이라면 모든 걸 다 걸죠. 돈으로 합격시킨다는 게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결국은 그쪽으로 가게 됩니다. - 282p.

이 소설은 군더더기가 없다. 스토리 전개와 묘사, 그리고 대사까지. 묘사되는 행동과 에피소드들 모두가 허튼소리 하나 없이 전부 사건의 전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그래서 책 후반부를 읽으면서 다시 앞부분을 들춰보게 된다. 정말 대사 하나, 장면 묘사 하나가 사건의 단서가 된다. 그래서 책의 번역가(권일영)는 이 소설을 두고 ’콤팩트하다‘고 했다. 

당신에게 지금 꾸리고 있는 가정이란 무엇인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것입니까? - 106p.

2002년 출간된 책인데 입시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고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성공도 결국 가정의 토대 위에 이루어져야 한다. 가정이 깨지면 아무 소용도 없다.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보다 앞선다.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 도쿄 독립서점 ‘Title’을 운영하는 주인장의 책과 서점에 대한 생각.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 도쿄 독립서점 ‘Title’을 운영하는 주인장의 책과 서점에 대한 생각.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 도쿄 독립 서점 Title 이야기
쓰지야마 요시오 / 정수윤 / 돌베개
Chiisana Koe, Hikaru Tana / Yoshio Tsujiyama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 도쿄 독립 서점 Title 이야기 쓰지야마 요시오


저자는 도쿄에서 독립서점 ‘Title’을 운영한다. 서점은 대표적인 아날로그 업종이어서, 요즘 시대에 서점을 차리기 위해서 계획 세우고 판을 벌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서점이 필요한 사람과 지역이 있다. 시대가 바뀌면 철학도 바뀌어야 한다. 예전의 서점과 지금의 서점은 여러 면에서 달리해야 한다. 기존에 ‘책’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책을 찾는 사람’으로 관심을 옮겨야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서점을 열기 위해서 준비했던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서점 주인으로서 책과 서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많은 손님을 맞이한다. 그중에는 ‘단골’도 있는데,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 서로 안부를 묻는 단골 등 다양하다. 고령의 단골은 어느 날 세상을 떠나고 그 가족이 소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귀한 책을 구하는 손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손님 등 서점은 책을 구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동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찾는 서점인가’는 ‘어떤 책을 파는 서점인가’와 마찬가지로 서점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책을 진열해놓고 팔지만, 책보다는 유대관계가 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돈을 주고 필요한 물건을 사 가는 상거래 행위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이 모여들어 지역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세상살이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 일을 동네의 작은 서점들이 해나가길 저자는 바란다.

     우리는 소비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에 우리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해주는 장소가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중

코로나는 산업은 물론이고 모든 생활양식을 변화시켰다. 비대면의 시대에 서점 운영도 어려워지고, 유대관계도 느슨해졌다. 위기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마련이다. 지역의 독립서점으로서 코로나 이후의 사회를 준비하는 데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격리되고 비껴가더라도 사람과 온정을 나누고 관계를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점 주인, 단골손님, 이웃 모두에게 주어진 일이다. 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적응해나가야 한다. 

     ‘상점을 열다’, ‘상점을 이어가다’라는 말이 있듯, 일반적으로 ‘상점’이란 인간의 의지에 따른 산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래 지속하는 상점을 보면 찾아오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스스로 형태를 바꾸기도 하면서, 그 상점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가는 듯 보이기도 한다. - 210p.

서점이 위치한 도쿄의 골목 풍경, 서정적인 사진, 저자의 담담한 일상. 책의 분위기가 ‘서점’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지금 바쁘다면 잠시 쉬어갈 때이다. 서점은 바쁜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래서 서점이 필요하다.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세계 곳곳을 이어주는 통로, 공항에 대한 폭넓은 사색.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세계 곳곳을 이어주는 통로, 공항에 대한 폭넓은 사색.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의 현대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밖에 없을 것이다. - 16p.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알랭 드 보통 / 정역목 / 청미래
A Week at the Airport : A Heathrow Diary / Alain de Botton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알랭 드 보통 / 정역목 / 청미래



20대 후반, 직장에서 제주도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비행기를 그때 처음 타봤다. 공항에 처음 가봤다는 얘기다. 그 얘기를 들은 상사는 내게 말했다. 

“첫 비행기 여행은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지.”

큰 의미까지는 모르겠고, 일단 처음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 본 경험은 다른 경험과 비교할 수 없었다. ‘자주 비행기를 타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경험은 두고두고 내 입에 오르내리는 경험담 중 하나가 되었다.

단편적이지만 직업으로서 파일럿과 스튜어디스, 장소로서 공항은 모두 낭만적이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직업과 장소라는 점이 있어서, 선망의 직업이고 낭만적인 장소다. 공항엔 떠남과 도착, 만남과 이별이라는 행위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등장하는 공항은 그것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도 떠나고, 기다리고, 도착하는 공간이지만 공항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 공간의 스케일도 그렇고, 공항은 이곳과 저곳이 아닌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라는 느낌이다. 한번 떠나면 중간에 세울 수 없다는 점이 또 다르다. 그래서 공항에서의 떠남은 더 아쉽고, 기다림은 더 애틋하고, 만남은 더 감격스러운지도 모른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은 고국의 쿠데타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 머물게 된 이야기다. 영화는 공항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터미널]의 주인공 톰 행크스와는 달리 알랭 드 보통은 공항 측의 제안을 받아 일주일을 공항에서 머물게 된다. 그리고 공항에 대한 경험과 전체적인 인상을 작품으로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다. 

저자는 공항 내에 있는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고,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공간도 들어가 본다. 그리고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비행기 조종사와 승무원, 관제탑 직원, 보안 경비는 물론, 청소원, 식당 직원, 구두 닦는 사람까지. 공항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공항 이용객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공항을 마주하고 있다.

저자는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만난다. 한 명은 남고 한 명은 떠나는 연인들의 모습과 마중 나온 가족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여행객, 사업차 바삐 떠나는 비즈니스맨들의 모습도 책에 담는다. 무엇보다도 가족을 떠나고, 기다리고, 만나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본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을,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애틋하고 슬픈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항은 일반인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지만 작가에게도 많은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의 작품 중에 공항이 배경이 되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공항에서의 만남과 이별, 기다림은 인생에서의 만남과 이별, 기다림과 다르지 않다. 공항에 대한 동경과 현실, 그리고 폭넓은 사색. 저자는 공항과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낭만적으로 들려준다. 작가의 위트와 통찰력이 돋보인다.



     현대 사회에 널리 퍼진 이혼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공항에서 재결합하는 모습은 끊임없이 눈에 띈다. 이런 맥락에서 냉정하거나 금욕적인 척하는 것이 이제 소용없다. 지금은 연약하지만 통통한 어깨를 꼭 끌어안고 무너지며 눈물을 뿌리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에서는 힘과 강인함을 투사하며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지독하게 연약하고 위태로운 피조물들이다. 초조하게 텅 빈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는 남자들이 있다. 반년 동안 이 순간을 고대해온 남자들이다. 자신의 눈을 빼다 박은 듯 잿빛이 감도는 녹색 눈에 할머니의 뺨을 물려받은 작은 소년이 공항 직원의 손을 잡고 스테인리스스틸 문 뒤에서 나타나자 그들은 더 자제를 하지 못한다.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긴 세월이 흐른 뒤, 어른이 된 자식은 일상적인 출장을 떠나기 전에 늘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할 것이며, 그러다 집행유예는 어느 순간 끝이 날 것이다. 한밤중에 멜버른의 한 호텔의 20층에 있는 방으로 전화가 걸려와, 세계 반대편에서 아버지가 치명적인 발작을 일으켰으며, 의사들은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그날 이후 이제 어른이 된 소년은 도착 라운지에 늘어선 사람들 속에서 늘 빠져 있는 얼굴 하나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 192p.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시리즈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시리즈


에도가와 란포 / 도서출판b
Rampo Edogawa


1.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시리즈

1) D자카 살인사건 2) 난쟁이 3) 거미남 4) 엽기의 말로 5) 마술사 6) 황금가면 7) 흡혈귀 8) 인간표범 9) 대금괴 10) 괴인이십면상 11) 소년탐정단 12) 검은 도마뱀 13) 요괴박사 14) 암흑성 15) 악마의 문장 16) 지옥의 어릿광대


2. D자카 살인사건 -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집. 아케치 고고로 등장.


D자카 살인사건 - 에도가와 란포


일본 애니메이션 ‘소년탐정 김전일’에는 김전일의 라이벌인 아케치 형사가 나온다. ‘아케치’라는 이름을 그냥 붙였을 리는 없고, 그 유래가 궁금했는데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 속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를 보고서 알았다.

에도가와 란포(1894~1965)는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본명은 ‘히라이 타로’다. ‘에도가와 란포’는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미국의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에서 착안한 필명이다. 추리소설에는 명탐정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탐정의 활약으로 소설이 인기를 얻는다. 에도가와 란포는 초기 작품에서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를 등장시켰다. 아케치는 한 두 작품에 등장시킬 생각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그의 작품 다수에서 등장한다. 

국내에 소개된 일본의 소설 중 추리, 탐정 분야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일본의 초기 추리소설을 접할 기회는 별로 없다. 도서출판 b에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들 중에 아케치 고고로가 등장하는 작품들을 16권짜리 시리즈로 기획하였고, 2019년 12월 기준 두 권이 발행되었다. 에도가와 란포에 대한 입문으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권에는 [D자카 살인사건], [유령], [흑수단], [심리시험], [천장 위의 산책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거의 70, 80년 전의 작품이지만 요즘에 읽어도 트릭과 추리가 대단하다. 물론 요즘의 작품처럼 대작은 아니고 짧은 단편 위주다.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1, D자카 살인사건)

1권에 실린 다섯 편 중 [천장 위의 산책자]는 범죄에 흥미를 느끼는 광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는 범죄애호증이라고 하는데 요즘 말로 치면 ‘싸이코패스’ 쯤 되겠다. 유희로서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 작가는 그 당시에 이런 발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사부로라도 역시 법적으로 죄인이 되는 것만은 아무리 생각해도 싫었습니다. 그는 부모나 형체, 친척, 지인들이 느낄 비탄과 모욕을 무시하면서까지 쾌락에 몰입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책을 보니 아무리 교묘한 범죄라도 반드시 어딘가는 어긋나서 그것이 범죄 발각의 단서가 되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생 경찰의 눈을 피해서 사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는 오직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그의 불행은 세상만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하필이면 ‘범죄’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보다 더 큰 불행은 범죄가 발각되는 것이 두려워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못한다는 것이었지요. - 158p. [천장 위의 산책자] 중.

작가는 괴기와 엽기, 에로티시즘, 환상성, 초자연성, 잔학성 등 매우 폭넓은 작품 활동을 했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 추리소설을 넘어 문학의 틀을 일구었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는 평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에도가와 란포로부터 시작한 일본의 추리소설은 오랜 기간 성장을 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는 추리소설 작가들은 모두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작가의 말]에는 에도가와 란포가 그의 작품들을 투고하고 단행본으로 발행하면서 썼던 작품 해설이 담겨있다. 여러 곳에 썼던 작가의 말을 한데 모아서 적어놓으니 하나의 기록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알 수 있다. 지금 읽는 과거의 추리소설은 신선함이 있다. 대가의 작품과 생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다.




3. 난쟁이 - 에도가와 란포의 중편, ‘난쟁이’와 ‘누구(何者)’


난쟁이 - 에도가와 란포


두 번째 시리즈 [난쟁이]에는 ‘난쟁이’와 ‘누구(何者)’ 두 편의 중편이 실려 있다. 두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이다. 우선 두 작품 모두 신문에 연재가 되었다. ‘난쟁이’는 신문사의 연재 일정에 공백이 생겨서 그것을 메우기 위해서 급하게 섭외가 된 것이고, ‘누구’는 시간 여유가 있었던 작품이다. ‘난쟁이’는 시간이 글쓰기에 촉박했던 탓에 아이디어를 내고 글 쓰느라 고생했지만, ‘누구’는 이야기가 술술 풀려 애먹지 않고 썼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난쟁이’를 쓴 이후에 본인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창피하다는 표현을 써가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반면 ‘누구’는 정통추리기법을 도입하는 등 추리소설로서 완성도가 높았다고 스스로 평했다. 하지만 저자의 뜻과는 반대로 대중은 ‘난쟁이’에 열광하고, ‘누구’에 대해서는 정통추리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는 무난한 작품이라고, 심하게 말하면 너무 정통이라 ‘시시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난쟁이’는 영화로도 세 번이나 만들어진다. ‘누구’는 이후에 에도가와 란포의 여러 수작 중 손에 꼽히는 작품이라고 대중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인정받는다.

[난쟁이]는 요즘에도 엽기적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 나온다.

     고바야시 몬조는 어느 날 밤 아사쿠사 공원에서 한 난쟁이를 목격한다. 그런데 그가 품에서 떨어뜨린 꾸러미에는 푸르스름하게 변한 사람의 팔이 들어 있었는데...

그 무렵 어느 사업가의 딸이 실종되고, 어느 백화점에서는 사람 팔 한쪽이 발견된다. 아케치 고고로는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로 연결되었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출생의 비밀, 실종, 살인, 시체 훼손, 유기 등 요즘에 나올 법한 강력범죄에 그 수법도 엽기적이다. 읽는 내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한 부분도 있어서 집중하며 읽게 된다. 아케치는 사람들을 탐문하고 증거를 분석한다. 그리고 진술과 증거 사이의 부조화를 찾아내 범인을 밝혀낸다.

     음악가가 불협화음에 민감한 것처럼 탐정은 사실의 부조화에 민감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종종 사소한 부조화의 발견이 추리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죠. - 167p.

후반부에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요즘 시대의 기준과는 다른 결말처리가 나온다. 아마도 저자는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창피하고 민망한 작품’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결말에 대해서는 독자의 판단에 맡겨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대’의 입장이다.

‘누구’는 밀실사건을 다룬다. 사건현장(방)으로 범인이 들어오고 나간 흔적은 있는데 건물 밖으로 빠져나간 흔적은 없다. 시작점과 도착점이 우물이다. 범인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탐정은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추리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쳐 범인을 찾아낸다. 불필요한 요소 없이 논리적인 추리를 바탕으로 수수께기를 풀어나간다. ‘에도가와 란포 본격추리의 결정판’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다. 현대 추리소설 작가들이 사용하는 방법들의 초기 버전 혹은 모델이 되겠다. 여기에서도 결론 부분에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범인은 당신입니다.’

1권에서 단편의 아기자기한 맛을 접했다면, 2권에서는 중편의 치밀함과 규모를 접할 수 있다. 더 복잡한 인간관계, 사건의 배경, 추리기법 등이 요즘 소설에 견주어도 대단하다. 좋은 독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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